(新九龍列傳)무림에서 살아가는 법

by김병수 기자
2009.09.22 10:29:58

잊혀졌던 숭유무제..다시 움직이다

[이데일리 김병수기자] 최근 금융권에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급부상한 우리금융(053000) 출신과 새 정권에 기여한 인사들이 초기 금융권 판세를 이끌어왔지만, 집권 2년을 앞둔 상황에서 KB금융(105560)지주 문제로 또 한차례 요동을 치고 있다. 지난 해 6월, 금융계 파워엘리트 9인(九龍)의 미묘한 차이를 가상의 무협소설로 풀어냈던데 이어, 같은 형식으로 최근의 상황을 각색해 봤다.

영귀(影鬼)검황은 이후로도 한참을 눈을 뜨지 못했다. 패(貝)재상회의의 올가미에다 예상치 못한 회춘(回春)대인의 수신(水神)검 공격에 기력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있다.

앞으로 국은문파 내의 권력투쟁은 더 격화될 것이 뻔하다. 권력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결국 어린 양의 피를 원하게 마련이다.

영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권력투쟁의 판을 읽어야 한다. 사소하게 지나쳤던 하나하나를 다시 살펴야 한다. 그래야 무슨 수단을 내더라도 낼 것이 아닌가.`

잊혀졌던 숭유(崇柳)무제가 떠올랐다. 관군으로부터 법인장풍을 맞고 은둔하다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까진 들었다.

숭유는 천자(天子)와 고대사(高對寺) 동기동창이 아니던가. 천자가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움에 처해있긴 했지만, 그래도 천자가 이 무림에서 믿을만한 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어려워도 칠성고수의 독주를 원하지는 않을 터다.

영귀는 호위무사를 불러 숭유무제에게 조용히 연통을 넣으라 명했다.

마침 정언(正彦)마제는 상중(喪中)이지 않던가. 무림의 고수들이 정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상가를 찾는 건 오랜 관례이지 않던가.

연통을 넣었던 호위무사가 오래지 않아 숭유무제의 답을 들고 들었다.

`무림이 어지러우나, 정언 부교주의 부친은 내 일찌기 뵙고 흠모했던 분이요. 금일 삼경(三更)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어찌 술 한잔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영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삼경이다. 노쇠한 숭유지만 공력을 회복하고 하나문파를 다시 이끌고 있지 않은가. 최근엔 문파 재건을 위해 은평학당을 설립하고 후진 양성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민초들을 달래기 위해 사재를 털어내는 사업은 천자의 뜻을 헤아린 결과일 게다.`

삼경을 조금 넘긴 시각. 숭유무제는 홀연히 나타났다.

한동안 무림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항간에 떠돌던대로 기력을 많이 회복한듯 하다.

영귀가 먼저 일어나 예를 갖췄다.

"우리 국은문파의 상가에 친히 발걸음을 해 주시니 광영이옵니다. 요즘 기력을 많이 회복하셨다는 말씀은 들었나이다. 다행입니다."

"허허…… 그래 보입니까? 고맙습니다."

영귀검황이 술 한잔을 건넨다. "하나문파의 작은 분란들도 다 정리되고 다시 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숭유무제의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허허…… 그런가요? 나 같은 늙은이가 이 무림에서 아직 할 일이 뭐 있겠소. 검황이 국은문파를 접수하면서부터 보여준 신출귀몰한 검법에 혼쭐이 나지 않았소? 이젠 검황의 시대죠……."



영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응큼한 숭유무제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 하는 것인가.

조용히 술 한잔을 들이킨 숭유가 말을 잇는다.

"그 땐 힘들긴 했었소.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문파의 일들이 꼬였고 하여튼 말이 아니었소. 그 때 검황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이리 재기하지도 못했을 것이요.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무슨 말씀인지……." 영귀는 어안이 벙벙했다. 요즘 가끔 정신을 놓는 일이 잦아지긴 했지만, 숭유무제와의 담판을 위해 여러 일들을 다시 꼼꼼이 복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자리에 나서지 않았던가.

숭유무제가 술 한잔을 권하며 다시 말을 잇는다.

"아, 그 때 말이요. 검황이 국은문파와 우리 하나문파의 통합을 사가(史家)들에게 얘기할 때 말이요. 우리 하나문파를 흡수하고 이 늙은이의 안위를 보장해주겠다고 안했소?"

"아……." 그랬다. 굴러온 돌 영귀검황은 국은문파의 단결을 위해 다른 문파들과의 전쟁을 서슴치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어차피 문파를 장악하기 위해선 사사로운 문제들을 외부와의 전쟁으로 묻어야 했던 때가 아니던가. 특히 정언마제는 그의 유순한 품성으로 인해 이런 전쟁에는 약점을 보였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때까지 말이요, 이 늙은이는 솔직히 우리 하나문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 같소. 검황이 그런 제안을 하고 나서야, 깨닫기 시작했단 말이요. 당시엔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 다시 한번 고맙소."

영귀는 할 말이 없었다. `서서히 공력이 약해지고 있던 숭유무제를 분노로 다시 깨웠단 말인가. 무림에 한동안 떠돌던 그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영귀검황의 독살설이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그 언제가부터인가, 칠성고수와 숭유무제가 무림재편을 위해 의기투합한다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한 잔 탁주의 안주거리로 올라오지 않았던가.

"참, 내 얼마전 천자를 한 번 뵐 일이 있었소. 기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 요즘 우리 하나문파가 민초들을 위해 벌이고 있는 `미소활력사업`에 대해 설명을 좀 하라고 해서 말이요. 마침 천자께서 검황 얘기를 하시더이다."

영귀의 귀가 움찔했다.

"천자가 묻더이다. 검황의 재주가 출중한데, 어찌 그런 실수를 한 것이오?"

어느 덧 취기가 오른 숭유무제가 떠듬떠듬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검황이 삼지성에서 나와 무림 본류에 합류하긴 했으나, 그 세월이 일천해 아직 무림의 법칙을 모두 숙지하지는 못한듯 하더이다. 무림은 위험한 곳이요. 한발만 잘못 나가도 사방이 적이 아닙니까. 재상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재상들과 무림의 갈등은 결국 천자께 누가 되고, 천자는 수족인 재상들을 끌어안아야 역사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천자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고 그 날의 상황을 전한 숭유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국은문파의 어려움이 말이 아닐듯은 하지만, 이제 정신을 추스려야 하지 않겠소. 검황…… 무릇 무림의 고수들은 식솔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게 할 수는 없지 않소. 검황의 혜안은 역시 대단하오. 우리 양 문파가 하나만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숭유무제의 강렬한 눈빛은 정확히 영귀검황의 두 눈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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