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발표 날짜는 '전략'..사연도 가지가지

by박호식 기자
2008.04.04 11:18:06

[이데일리 박호식기자] 지난 1월15일 오전.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와 연간실적설명회를 하고 있는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 특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실적발표때문에 본관에 몰려있던 국내외 취재진의 눈길이 모두 압수수색으로 쏠렸다.

전세계 투자자들의 눈과 귀가 모아진 때 , 압수수색이 이뤄지자 삼성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글로벌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은 압수수색 기사에 다소 빛이 바랬다.

이 때문일까. 삼성전자가 1분기 실적 발표일을 25일로 결정했다. 통상 실적발표일보다 2주 정도 늦춰진 것이다. 특검 수사는 오는 23일 끝난다.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일 조정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실적이 예상보다 긍정적으로 나온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실적발표일을 특검 이후로 잡은 것은, 특검이 끝나야 올 투자규모 등 시장이 궁금해 하는 것을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은 실적발표일을 정하는데도 고심하고 있다. 갖가지 사연들이 그 속에 들어있다.



이런 사례도 있었다. 2006년 현대차는 4월27일로 예정됐던 실적발표일을 급하게 연기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영공백 우려, 경제가 받을 타격에 대해 재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현대차는 실적발표 연기에 대해 "해외법인 결산이 끝나지 않아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1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치보다 좋게 나온 것이 실적발표를 연기했던 주요한 배경이 됐다. 예상보다 좋은 실적이라면 빨리 시장에 내놓고 싶을텐데 당시 상황에선 영 어색했다는 것.

현대차는 그 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할때도 노조파업으로 날짜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경영에 주요변수가 될 파업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실적전망을 설명해야 하는 기업설명회(IR)를 열기가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지난 1월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연간실적 발표일을 당초 15일에서 급히 14일로 앞당겼다. 삼성전자와 발표일이 겹쳤기 때문이다. 크게 좋아진 실적을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삼성전자와 겹치면서 홍보효과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

실적에 자신감을 찾으면서 실적발표일을 다른 기업보다 빨리 잡는 사례도 있다.

LG데이콤의 경우 2004년부터 흑자로 전환하는 등 실적이 호전되자 다음해부터 실적발표일을 업종 내 다른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잡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LG데이콤은 다른 업체에 비해 늦게, 하는둥 마는둥 실적을 발표했었다. 실적이 호전되면 남보다 일찍 시장에 알리고 싶은건 인지상정. 다른 기업들의 실적발표가 계속된 뒤 실적을 내놓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계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