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벌써 1년…화약고 된 중동 '안갯속'

by방성훈 기자
2024.10.06 17:36:31

[가자전쟁 1년] ‘중동판 9·11테러’…국제 문제로
이스라엘, 장기전·확전 불사…親이란 세력 절멸 의지
핵시설 타격 우려속 對이란 보복 주목…유가도 출렁
민간인 4만명 이상 숨져…가자 인도주의 위기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이소현 방성훈 기자]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가자전쟁이 발발했다. 꼭 1년이 지난 현재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와 또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란과의 전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5차 중동전쟁’ 우려도 나온다. 중동 안보 지형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불과 1년이란 시간 동안 4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연일 종전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겠다’며 공격을 강행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6일(현지시간) 새벽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남부를 공격한 이후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사진=AFP)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중동판 9·11테러’다. 국제사회의 신(新)냉전 구도를 가속화하는 시발점이 됐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가자전쟁 1년을 맞아 지난 4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지역적 충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문제로 확대했고, 다음달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이슈로 자리잡았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서구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반(反)서구 진영이 대립하면서 중동 갈등은 새로운 차원의 국제적 이슈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가자전쟁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다.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목표는 자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보복 경향을 보였다. 하마스를 절멸시키고 팔레스타인을 완벽히 통제하겠다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하마스 소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이스라엘은 휴전·종전 협상은 외면하고 헤즈볼라와 이란까지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전쟁을 자국 중심의 중동 안보 재구축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즉 이란 대리 세력에 의한 ‘그림자 전쟁’을 끝내고, 이란이나 친이란 단체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인식을 심어 패러다임을 전환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자신들의 이슈로 만드는 과정이 주목된다”며 이스라엘이 확전을 통해 이란을 최대한 압박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의 확전이나 장기전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이는 이란의 심장인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지도자를 암살한 것이나,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고위 지휘관 대다수를 콕 집어 사살했다는 것에서 확인된다. 이미 충분한 제거 능력을 갖췄음에도 미국 등의 반대로 주저했음을 시사하며, 동시에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음을 국제사회에 선언한 셈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승인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군사 대응, 즉 개별 사안에 따라 대응한다는 공식도 파기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제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 교수는 “이스라엘 역시 1년 이상 전쟁을 지속한 적이 없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경험도 처음이어서 장기적으로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하마스에 대한) 보복·응징에 이어 이란과의 갈등을 포함한 지역적 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휴전과 가자지구 통치에 관련해서는 어떤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갯속”이라고 내다봤다.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FP)


현재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보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어떻게 보복할 것인지다. 이란은 올해 4월과 이달 1일 이스라엘을 겨냥해 각각 300기, 180기의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1979년 혁명으로 이란에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뒤 처음으로 직접 타격에 나선 것이다.

인 교수는 “개혁파인 이란 대통령은 서방의 오랜 경제 제재로 피폐해진 경제 회복을 위한 대외 관계 개선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도발에도 인내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싶어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국가 위신이란 게 있어 두 세력의 수장이 죽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반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일각에선 이란 핵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은 지난 4월 보복 당시 이란의 주요 핵시설로 둘러싸인 이스파한의 공군 기지를 공격하면서도, 시설 자체는 공격하지 않았다. 다음엔 직접적인 타격이 가능하다고 경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석유 시설 공습을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국제유가가 5% 급등하기도 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정권을 봉쇄하려면 지속적인 억제력과 외교가 필요하다. 이란에 대한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공격이 중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며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종식시키는 데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란 억제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은 필수이며, 이를 위해선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에 향했다. ‘지구 상 가장 큰 감옥’이라 불리는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5일 기준 4만 1825명이다. 이스라엘에선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피습으로 116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01명이 납치 후 억류돼 있다. 이스라엘군 사망자도 346명에 이른다.

인 교수는 “가자지구 365㎦ 규모 공간에서 220만 주민이 사는데 공습과 지상전까지 진행돼 식량과 의료품 공급이 제때 안 되고 있다”며 “인도적 위기는 이 전쟁의 또 다른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이스라엘 인질 문제 역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