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0·29 참사? 재난 용어 채택 절차가 궁금합니다[궁즉답]

by장병호 기자
2022.12.29 10:14:32

한국기자협회 제정 '재난보도준칙'
재난 공식 용어 채택 절차 규정 없어
각 언론사별 판단 따라 용어 선택

이데일리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질문을 담당기자들이 상세하게 답변드리는 ‘궁금하세요? 즉시 답해드립니다’(궁즉답) 코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18일 서울 녹사평역 광장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직접 마련한 시민 분향소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주도로 설치된 시민 분향소에는 참사로 목숨을 잃은 158명 가운데 유가족의 동의를 얻은 희생자 70여 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A: 결론부터 말하면 재난 사고에 대해 언론단체가 공식 용어를 채택하는 절차는 별도로 없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2014년 4·16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언론의 재난보도에는 방재와 복구 기능도 있음을 유념해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고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또한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이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난보도준칙’에 재난 사고에 대한 공식 용어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현재 이태원 참사 보도에서 용어 결정은 각 언론사별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태원 참사를 ‘10·29 참사’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는 지역명을 넣는 것보다 사고 발생일을 넣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사고 발생 이후 한국심리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지역 혐오 방지를 위해 이번 사고를 ‘10·29 참사’로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MBC가 “특정 지역의 이름을 참사와 연결지어 위험한 지역으로 낙인 찍는 부작용을 막고, 해당 지역 주민과 상인들에게 또 다른 고통과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한국심리학회 성명서를 인용해 ‘10·29 참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태원 참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재난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골목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입니다. 공간성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에 ‘이태원 참사’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발생한 많은 재난 및 사건사고들 또한 지역명을 그대로 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재난, ‘강남역 살인사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등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라는 용어 대신 ‘이태원 압사 사고’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압사’를 빼고 ‘이태원 사고’로 쓰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정한 공식 용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은 ‘이태원 참사’ 또는 ‘10·29 참사’로 이번 재난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참사’의 사전적인 의미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입니다. 재난 발생 2개월이 지났지만 ‘사고’라는 단어로는 너무나 비극적이었던 이번 재난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언론의 공통된 판단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한편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났던 테러 사건이 ‘뉴욕 쌍둥이빌딩 테러 사건’에서 ‘9·11 테러’로 용어가 변경된 것은 해당 사건이 뉴욕 세계무욕센터(쌍둥이빌딩)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 국방부 펜타곤 테러 사건, 유나이티드 항공 93편 테러 사건 등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