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피용익 기자
2013.04.12 10:46:03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오다 갑자기 대화를 제의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과의 대치 국면이 장기화되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실제 도발 움직임이 감지된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회 외교통일위·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과 대화의 일환으로 오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류 장관은 ‘통일부 장관 성명’에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북측이 제기하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명 발표 당시만 해도 북한에 대한 대화 제의가 아닌 원론적인 입장 표명으로 해석됐지만,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뒤늦게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에 도발 중단 및 핵무기 개발 포기 등 ‘올바른 선택’을 촉구하면서 강력한 안보 태세를 강조해왔다. “도발이 발생한다면 일체 다른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고 초전에 강력 대응해야 할 것”, “북한의 협박ㆍ공갈에는 어떠한 보상도 없다는 것이 확고한 정부의 입장” 등의 강력한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처음으로 대화 쪽으로 선회하며 입장을 180도로 바꾼 것은 ‘강대강’ 대치 국면을 완화하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자칫 시작도 하기 전에 용도폐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12일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며 양측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류 장관의 성명은 시의적절했고 의미가 있다”며 “성명에서 대화를 강조한 것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 문제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위기감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사일을 동해 쪽으로 발사하는 대신 국지적 도발을 감행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류 장관의 성명 발표 직후 “미국과 괴뢰전쟁 광신자들이 우리를 오판하고 요행수를 바란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며 “전쟁은 시간문제이며 남은 것은 무자비한 징벌뿐”, “명령만 내리면 원쑤 격멸의 선전에 폭풍쳐 달려나갈 것”이라고 강도 높은 위협을 가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북한이 박 대통령을 향해 “청와대 안방주인까지 나서 파렴치한 언동을 한다”고 비난을 퍼부은 당일 대화 제의를 함에 따라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전일 한국여기자협회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북측이 ‘세게 협박을 했더니 효과가 있구나. 역시 남조선에는 협박이 제일 잘 통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앞으로 5년간 남북관계를 관리하는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시시각각 바뀌는데 어떻게 한 방향만 고수할 수 있겠느냐”며 “박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적절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