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가는 K-관광에 날개…‘혁신중개자’ 전략 통했다
by김명상 기자
2025.12.05 06:04:00
한국관광공사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
기업 진단부터 사업화까지 원패스 지원에 나서
싱가포르·도쿄·방콕 KTSC, 현지 개척의 기지로
오픈이노베이션으로 5개국서 29건 실증도 추진
지원 기업의 각종 해외 실적·투자 성과 가시화
| | 관광벤처를 위해 해외 진출 비즈니스 기회를 연결해주는 한국관광공사의 글로벌 비즈니스 데이 현장 (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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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태국 현지인들이 모바일로 한국에 있는 병원을 예약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산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 덕분이다. 강남언니 플랫폼 운영 회사 힐링페어는 올해 한국관광공사 ‘관광 글로벌 챌린지’ 기업에 선정돼 방콕 관광기업지원센터(KTSC)에 입주했다. 지난해 7월 태국어 버전을 출시한 강남언니는 현지 거점 외에 공사의 마케팅, 컨설팅 지원을 받아 단 7개월 만에 예약이 10배 가까이 급증하는 실적을 올렸다.
황조은 힐링페이퍼 이사는 “의료는 공공 서비스 성격이 강해 외국인 환자 대상 광고나 서비스 제공 시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며 “한국관광공사가 현지 시장 진출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준 덕분에 태국을 포함한 해외시장 진출을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관광 산업은 첨단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트래블테크’ 산업으로 진화하며 국경의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K콘텐츠, 의료, 모빌리티, 숙박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에게 글로벌 시장 도전에 나설 절호의 기회이자 과제로 떠올랐다. 문제는 현지 법과 제도, 세무, 실증, 마케팅 등 초기 진입 장벽이 조직력, 자금력이 약한 스타트업·벤처가 독자적으로 감당하기엔 턱없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가 2020년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을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일반적인 지원을 넘어 ‘기업 발굴-역량 강화-현지화-실증-사업화’로 이어지는 ‘원 패스 지원체계’가 특징이다. 올해까지 육성사업을 통해 총 유망 관광 스타트업 147곳이 글로벌 진출 트랙에 올라탔다.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은 크게 ‘관광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 ‘해외 관광기업지원센터 연계 지원’, ‘관광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등 3가지로 나뉜다. ‘관광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은 관광벤처가 초기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해외 시장에서 바로 실적을 낼 수 있는 토대 제공에 초점이 맞춰졌다. 매년 30개 내외 기업을 선발해 최대 2억 원 규모 글로벌 사업화 자금, 역량 강화, 투자사 연계 자금 조달 등 프로그램을 패키지화해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으로 해외 진출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다진 기업에 대한 지원은 글로벌 베이스캠프인 ‘해외 관광기업지원센터’로 연결된다. 아시아 주요 도시인 싱가포르와 일본 도쿄, 태국 방콕 3곳에서 운영 중인 KTSC는 상주 업무공간 외에 법인 설립 등 현지 진출에 필요한 법률·세무 자문, 파트너 매칭, 마케팅 지원 등을 제공한다.
‘관광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은 올해 처음 도입됐다. 보유 상품과 서비스의 현지 사업성을 실증(PoC)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일본과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5개 핵심 시장에서 공사 해외지사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원스톱 지원을 통해 상용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도입 첫해임에도 올해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 에어트립, 태국 대형 카드사 KTC, 말레이시아 에어아시아무브 등 현지 기업들과 총 29건의 실증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관광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 연간 추진 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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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 3단계 프로그램을 거친 스타트업·벤처 기업들로부터 가시적인 성과도 도출되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 입상, 투자 유치 외에 협력·제휴처가 늘면서 매출액이 증가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 | 오사카엑스포에 마련된 스트리밍하우스-칸자시 공동 홍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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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글래스를 활용한 AR(증강현실) 보행관광 서비스 ‘휠(Wheel) AR’을 개발한 ‘엘비에스테크’는 미국과 영국 현지에서 보행환경 분석 실증을 수행해 CES 2025·2026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여행·관광 부문에선 ‘최고 혁신상’까지 거머쥐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도쿄 KTSC에 입주 기업인 워케이션 플랫폼 ‘더 휴일’ 운영사 ‘스트리밍하우스’는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지역 워케이션 프로그램으로 일본 최대 OTA 에어트립의 자회사 ‘칸자시’로부터 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사용 가능한 eSIM 데이터를 제공하는 ‘슈페라링크’ 운영사 ‘가제트코리아’는 방콕 KTSC 입주 후 태국 대형 카드사 KTC와 여행자용 eSIM 혜택 실증을 완료했다. 최근엔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 산하 ‘오렌지 트래블’과 공급 협력 계약도 체결했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증, 매칭 중심으로 사업 방향과 구조를 바꾸면서 실질 성과인 매출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글로벌 챌린지 신규 육성기업의 잠정 매출은 약 1638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약 40% 늘었다. 해외 파트너와의 계약·협약 등 네트워크 구축은 60건을 넘어선 상태다.
| | 지난 9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실증 프로그램 연계 상공회의소 간담회 참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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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는 앞으로 기업 육성 분야를 세분화해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스타트업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더욱 다양한 방식과 형태의 제휴·협력 모델을 만들기 위해 지원대상을 관광 외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문소연 한국관광공사 관광기업육성팀 팀장은 “혁신 중개자로서 국내 관광 벤처와 해외 수요처를 연결해 관광 업계의 현안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이끄는 혁신 중개자이자 마중물로서 공사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내년엔 단계별 관광 글로벌 선도기업 육성사업을 거치지 않았지만 시너지와 성과가 예상되는 기업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