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달의 세상보기]은행의 공공성과 상업성에 대한 단상

by김기훈 기자
2012.11.08 10:54:01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 오늘은 어렵고 내일은 더 암울하다. 우리나라 경제현실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말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모든 사람이 민감해진다. 더욱이 너 나 없이 다 어려운데 혼자만 잘 나가면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들, 특히 은행이 그렇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조 단위의 이익을 내다보니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기들 잇속만 챙긴다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은행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기침체라는 힘든 상황이 이를 조금 더 부각시켰을 뿐이다.

은행은 그 역할의 공공성 때문에 일반기업과 달리 이윤 극대화만을 목표로 경영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오랜 기간 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지속되면서 은행의 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형성됐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자율성을 확보한 은행들이 과도한 경쟁과 이윤추구에 편중된 경영행태를 보이면서 은행의 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만들어졌다. 특히 비올 때 우산 빼앗는 야속한 대출행태, 우물 안 개구리식 무모한 외형확대 경쟁, 펀드 등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와 같은 후진적인 경영행태는 은행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키우는 원인이 됐다.

은행의 이러한 행태가 아무리 밉고 형편없더라도 은행을 몰아세워 분풀이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은행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동시에 자금의 조달과 중개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은행은 국가 금융시스템의 근간으로서 은행의 수익성과 성장성, 건전성은 국가의 신인도를 결정하는 핵심 평가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은행의 공공적 역할도 이윤추구라는 상업적 동기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에서 은행도 적정수준의 이익을 내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

최근 은행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실물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데다 시장도 이미 포화상태에 있어 성장성이 둔화되고, 저금리 기조와 대출금리 및 수수료 인하의 사회적 압력 등으로 수익성 향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규제와 감독 측면에서도 은행의 자본과 자산의 건전성,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은행의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된 1998년 이후 비로소 은행으로서 본격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은행의 역사가 10여년에 불과하고 은행은 아직 성장이 필요한 유치(幼稚)산업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영환경은 이미 성장단계를 지나 성숙단계에 진입했고 은행은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은 활로 모색을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다만 금융산업은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기술혁신이나 신제품 개발을 통해 단기간 내 획기적으로 수요를 확대하기 어려우므로 뾰족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은행이 또다시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의 공동 개발자인 미국 예일대학의 로버트 실러 교수는 최근 저서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에서 금융은 인류발전을 이끌어 온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월가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시점에서 금융의 역할에 대해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실물부문에 대해 자금공급이 더욱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경제의 장기침체가 우려되는 오늘날 은행의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다. 은행은 이러한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공공성을 달성해야 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얻어진 상업적 성과도 당연한 결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은행의 공공성과 상업적 이윤동기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은행들이 더욱 성장하고 실물경제의 발전에도 이바지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