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쌓아둔 돈` 풀기 시작했다
by민재용 기자
2012.03.20 11:00:58
경기회복 조짐에 쌓아둔 돈 M&A에 활용
배당 등 주주 환원에도 적극 나서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 금융위기 후 경기 침체에 대비해 투자를 줄이고 곳간에 현금을 쌓아뒀던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풀기 시작했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미래를 대비해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선제적 대응 전략을 취하려는 것인데, 일부 기업은 그동안 소홀했던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며 주주 환심 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9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금융업을 제외한 미국 내 대기업 1100개사의 지난해 말 보유 현금은 전년대비 약 3% 증가한 1조 2443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 중에서도 현금을 특히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불경기 속에서도 꾸준히 수익을 내왔던 정보기술(IT) 기업들이다. 니혼게이자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시스코 시스템즈, 구글, 오라클, IBM, 인텔 등 미국 대표 IT 기업 7개사의 보유 현금(투자 유가증권 포함) 규모는 약 2938억달러로 1년 전에 비해 29% 증가했다.
이 중 지난해 130억달러 이상의 순익을 벌어들인 애플의 현금 유동성은 976억달러로 미 기업 중 최고였다. MS가 517억달러로 애플의 뒤를 이었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이 이처럼 증가한 것은 기업들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재투자하기보다 현금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기업들의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경기 확장기에 대비해 사업 영역을 넓히려고 보유 현금을 M&A에 적극 활용하고 나선 것.
구글은 보유현금을 바탕으로 최근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사들였으며 MS도 인터넷 전화 소프트웨어 업체 스카이프를 인수했다. 저가 태블릿 PC로 애플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아마존닷컴도 물류 로봇 제작업체 키바 시스템스를 인수했다. 세계 최대 물류업체 UPS도 유럽의 TNT 특송을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허리띠를 졸라매느라 주주 환원에 미흡했던 기업들의 주주 챙기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1995년 이후 한 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애플이 이날 350억달러 규모의 주주 배당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IT 업계의 주주 배당 재개가 본격화될 것이란 망이 제기되고 있다. 시스코와 IBM 등은 지난해 배당을 시행했으나 구글, 아마존, 이베이 등은 여전히 배당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배당수익률이 1.8%로 2%를 넘는 인텔과 MS 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시스코(1.6%)나 IBM(1.5%), 오라클(0.8%)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라며 "애플의 배당재개가 나머지 IT 기업들의 배당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