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西村), 골목마다 옛 흔적이 남아 있죠"
by조선일보 기자
2009.08.25 11:38:00
건축가 임형남과 함께하는 서촌 ''건축투어''
[조선일보 제공] 이만큼 뿌리 깊고, 이토록 잊혀진 동네는 흔히 없다. 경복궁 영추문(迎秋門)에서 인왕산 자락 아래 놓인 서촌(西村) 얘기다. 여길 그저 경복궁 서쪽 동네로만 알면 곤란하다. 이곳은 세종대왕이 나고 영조대왕이 자란 땅, 추사 김정희를 낳고 겸재 정선을 품은 고을이다. 역사적인 건물들은 모두 스러지고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과 콘크리트 건물이 뒤섞인 거리가 됐지만, 아직도 곳곳엔 오래된 일화들이 남아 있다.
이 서촌의 가치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서울시와 홍선희 건축문화학교 본부장이 '서울 문화의 밤' 행사의 일환으로 공동기획해 29일 진행, 선보이는 '건축투어'다. 건축가와 함께 서울의 '공간'을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정동·북촌·홍대앞·대학로에서도 진행되는데, 서촌 투어는 여기 살았던 건축가 임형남씨가 맡았다. 종로구 통의동~창성동~효자동~궁정동~청운동~신교동~옥인동~필운동을 걸어서 돌아보며 서촌 구석구석 숨은 공간을 일러준다. 최근 임씨와 동행 취재하며 서촌의 '멋'을 미리 훑어봤다.
"서촌은 풍화된 동네예요." 서촌 입구 격인 경복궁 옆 효자로에서 만났을 때 임씨는 말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평범한 골목마다 남아 있는 옛 흔적에 의미를 두면, 정말 매력 넘치는 곳이죠."
서촌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통의동 백송' 자리(통의동 35-15)부터 그렇다. 여기엔 원래 수령 600년이 넘는 높이 16m, 둘레 5m가 넘는 백송이 있었다. 일대의 영락을 빠짐없이 지켜봤던 백송은 경복궁 동쪽 재동 백송, 조계사 경내 수송동 백송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이 크고 아름다워 1962년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년 낙뢰를 맞아 쓰러진 뒤, 지금은 아랫둥치 얼마간과 이후 새로 심은 어린 백송만 남아 있다.
"보이는 건 별로 대단치 않아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려고 하면, 수많은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임씨의 말대로 오랜 세월을 거슬러 생각하면 통의동 백송 일대는 의미가 깊다. 바로 영조(1694~1776)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창의궁(彰義宮)터이기 때문이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 증손인 추사 김정희(1786~1856)도 여기서 태어났다고 한다.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 고택에도 백송이 있는데, 추사가 어릴 적 본 백송을 잊지 못해 심었다고 하더군요."
| ▲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보안여관 (사진 위)효자로 옆 시네마서비스 사옥(사진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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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궁터를 지나 효자로를 따라 청와대 앞을 지나는 동안 잠시 과거에서 현대로 시간이동이 필요하다. 대림미술관~시네마서비스~여운헌으로 이어지는 현대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과 현대미술을 주로 전시하는 대림미술관(통의동 35-1)은 1960년대부터 일반 주택으로 쓰였던 건물로, 프랑스 건축가 뱅상 코르뉴(Cornu)가 미술관으로 개조해 2002년 개관했다. 한국 보자기를 본뜬 정면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정원을 둘러싼 베란다가 아름답다. 대림미술관 인근 효자로변에 있는 시네마서비스(통의동 35-23)는 인근에서 여러 해 살았던 건축가 황두진씨 작품이고, 청와대 뒤편 청운동 길가에 콘크리트벽과 담쟁이덩굴을 드러낸 채 서 있는 여운헌(청운동 108-5)은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로 유명한 건축가 우경국씨가 지었다.
나지막한 건물로 길가에 여백을 둔 진화랑(통의동 7-38), 아름드리나무를 살리기 위해 마당을 남긴 옛 헥사콤(통의동 7-29), 청와대 직원들이 이용하는 '보안여관'이었다가 전시공간으로 바뀐 낡은 이층집(통의동 2-1) 등이 자리하고 있다.
| ▲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셨던 선희궁지(사진 위), 청운동 입구에 있는 여운헌(사진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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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헌으로 올라갔던 서촌 여행은 청운동주민센터 앞길을 건너 신교동으로 향하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국립서울농학교 교정 안쪽 뒤뜰에 선희궁지(宣禧宮址·신교동 1-1)가 있다. 이곳도 영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존왕 장조(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셨던 사묘(私廟) 선희궁이 있던 자리다. 지금은 신위가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칠궁(七宮)으로 옮겨가 텅 빈 건물 주변에 꽃만 무성히 피어 있다. "영조가 후궁 출신이라 공식 제사를 받지 못하던 모친 최숙빈을 위해 지은 사당 '육상궁'이 있던 곳에 비슷한 처지인 비빈을 합사한 곳이 칠궁이죠."
청운동에서 신교동 쪽으로 길을 건널 때도 주위를 잘 둘러봐야 한다. 선희궁을 지은 뒤 동편에 놓은 '새다리'(新橋)가 있어 이곳 지명이 신교동이 됐단다.
선희궁지부터는 이미 사라진, 혹은 잊혀진 풍경을 느끼는 길로 들어선다. 신교동·옥인동을 아우르는 '송석원길'의 송석원(松石園)은 조선시대 평민시인 천수경의 집이자 호였고,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가 황태자비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친가도 옥인동에 남아 있다.
건축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배화여고 건물 뒤편에 살아남은 백사 이항복(1556~1618)의 집터 필운대(弼雲臺·필운동 산1-2). '필운대'라 새겨진 커다란 바위 앞에서 산바람을 쐬며, 건축투어를 마칠 때 임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