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강종구 기자
2006.07.03 10:48:14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요즘 신용시장 최대 화두는 단연 `건설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새로운 금융기법의 `총아`로 등장한 가운데 곳곳에서 상당한 쏠림현상마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경기가 하반기 이후 하강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건설PF가 과거 카드사태와 같은 위기를 불러올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예상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PF에 대한 의존도가 극심해진 ABS시장, 건설PF 우발채무가 급증한 건설회사, PF대출로 급성장한 저축은행, PF ABS 투자비중이 높은 리테일 채권시장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건설사 PF에 대한 우려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람은 굿모닝신한증권의 크레딧애널리스트 윤영환·길기모 두 연구위원이다. 작년 여름께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하고 10월말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경고메시지를 보냈던 두 사람은 3일 완결편에 가까운 후속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몇달새 우려와 경고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두 위원은 "일부 BBB-등급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규모는 관용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만일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리파이낸싱 중단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이미 작년 9월과 올해 2월 두차례에 걸쳐 저축은행의 PF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에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저축은행 부동산관련업종에 대한 대출은 총대출의 40.3%에 이르고, 기업대출의 53.3%에 달한다.
증가속도로 보면 쏠림은 더욱 심하다. 연간 기업대출이 6조7000억원 증가한 가운데 78.8%인 5조3000억원이 바로 부동산관련업종 대출증가액이다. 특히 부동산관련 대출은 M&A와 함께 저축은행 외형확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고, 이로 인해 대형 저축은행일수록 쏠림의 정도가 심하다.
윤영환 연구위원은 "저축은행 PF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개발단계, 다시말해 토지매입과 인허가 등 분양전 단계에 대한 대출이라는 점"이라며 "사업이 모양을 갖추고 나면 은행 PF 또는 PF ABS로 자금을 조달해 상환되는 일종의 브릿지론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윤 위원은 이어 "저축은행 PF의 평균 운용수익률은 18% 수준으로 상당한 위험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건설/부동산과 관련한 환경변화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전성 악화 가능성에 대한 예보 등의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금은행의 건설 및 부동산업 대출은 폭발적 증가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산업대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부동산업 대출 증가액은 4조7000억원. 지난해 연간 6조3000억원의 4분의 3에 달하는 유례없는 수준이다. 전체 산업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사상 최초로 20%를 돌파했다.
윤 연구위원은 "2004년 4분기 건설경기 침체 우려로 건설/부동산 대출이 급감했다가, 2005년부터 은행 외형경쟁이 재연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며 "은행의 건설관련 대출이 줄었던 2004년 4분기부터 묘하게도 PF ABS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대출을 근본적으로 줄인 것이 아니라 대출을 한 다음 이를 ABS로 유동화시켜 조기에 대출자금을 회수하고 장부에서 제거했음을 시사한다.
윤 연구위원은 또 "예금은행의 금융시장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특히 규제환경의 변화에 민감해서 노선변경이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며 2002년 동일인여신한도 조정이 카드사와 MMF에 미쳤던 영향을 되새겨 보라고 충고했다.
ABS시장에서의 PF 쏠림은 점입가경이다올들어 5월까지 ABS 발행물량의 51.1%(MBS제외)가 PF ABS다. 지난해 연간 28.5%였던 비중이 배 가까이 증가한 것. 다른 ABS 발행이 저조한 가운데 PF ABS만 급증하고 있다. 발행비중이 PF에 이어 2위인 캐피탈(19.4%)의 자금도 상당부분 건설/부동산 시장으로 가는 돈들이다.
특히 PF ABS의 발행이 대부분 저등급채권인 BBB-와 BBB0에 몰려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5월까지의 올해 발행된 PF ABS중 BBB-비중은 무려 57.6%, BBB0의 비중은 23.8%에 달했다.
왜 이렇게 한계등급인 BBB-비중이 높을까. 윤영환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요구하는 신협, 금고, 저축은행 등 리테일 시장에서 주로 팔리고 있고, 신용도를 판단할 때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현금흐름보다는 시공사의 신용공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PF ABS의 주요 대상이 되는 BBB-기업의 움직임에 대해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부동산개발 사업과 관련된 PF ABS도 많지만 이미 2004년을 전후해 몸집 불리기를 하면서 부담하고 있던 PF 대출이 지금에 와서 PF ABS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은행이 빠져 나간 자리를 ABS가 채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다시 말해 은행의 PF 대출보다 PF ABS가 환경변화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CP시장에서의 PF쏠림은 주로 시행 건설사 관련 ABCP의 폭발적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CP잔액에서 건설과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04년말 7.3%에서 지난해말 15.5%, 올해 6월말 21.5%로 급상승하고 있는데, 시공사가 자체 분양사업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사가 사업승인을 딸때까지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속 차환발행하는 ABCP들이 대거 발행되고 있다.
PF ABS가 받은 신용등급을 보면 대부분 해당 부동산개발을 담당한 시공사의 신용등급과 일치한다. 1차적인 원리금 상환의무는 시행사에 있지만, 시행사중 자체 신용만으로 상환능력을 갖춘 곳은 거의 없어, 시공사가 지급보증이나 채무인수 등으로 신용보강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신용평가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시공사의 신용등급에 준해 ABS의 신용등급을 매긴다.
채무인수나 지급보증은 장부상 기록되지 않아 확정부채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자기의 부담이 될 수 있는 우발채무다. BBB급 건설사 중에서는 이 우발채무의 규모가 장부상의 총차입금이나 총부채보다도 훨씬 많고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과도한 곳이 적지 않다.
윤 연구위원은 "형식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PF ABS는 신용카드사태때 경험했던 ABS의 부외처리와 전혀 다를 바 없다"며 "건설회사의 경우 우발채무를 제외한 재무제표상의 부채비율은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지난해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아, 투자자들에 대한 조기경보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 실제로 각 신용평가사들이 건설사 신용평가 보고서에 PF 우발채무로 인한 위험을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윤 위원은 "PF에 대한 신용공여는 대부분 건설업체가 제대로 공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건설사가 아무리 많은 지급보증이나 채무인수 약정을 했더라도 그로 인한 건설사 신용도 문제를 투자자들이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설PF는 우발채무의 가중이 시공사 신용분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며 "그래서 상대적으로 BBB-기업들의 PF조달이 더욱 활발했고, 한계등급의 성격상 등급 하락이 있을 경우 자칫 등급하락이 자금이탈을 부르고, 그로 인해 다시 등급하락이 강요되는 유동성 경색의 악순환(rating cliff)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팽팽한 긴장감을 연착륙으로 이끌 수 있는 관건은 정보투명성의 확대에 있다. 신용평가사에 충분한 자료가 제공되어야 하고, 신용평가사는 시장에 충분한 정보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윤 위원은 "신용등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은 신용평가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용위험을 충분히 공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윤 위원은 "PF 우발채무는 해당 사업장 뿐만 아니라 시공사의 다른 사업장들의 진행상황까지 종합적인 정보제공이 필수적"이라며 "우발채무의 내역 정도가 기업의 비밀이라는 신용평가사들의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