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FX칼럼)흥분하면 다친다!

by이진우 기자
2001.10.15 13:06:07

[edaily] 수많은 매체를 통해 다양한(때로는 천편일률적인) 외환시황과 전망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시대에 필자 또한 이데일리라고 하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적지 않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칼럼" 형식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외환거래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장의 흐름과 내부 분위기를 정리하고 나름대로의 View를 피력하고자 노력합니다만, 항상 두려운 것은 이 칼럼이 정치나 시사칼럼이 아니라 돈이 오고가는 분야를 다루는 것이다 보니 혹 엉뚱한 소리로 몇 사람에게라도 금전적인 손실을 입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필자의 칼럼에서는 이코노미스트나 애널리스트의 글에서 접할 수 있는 정교한 펀더멘털 분석이나 무슨 특별한 기법에 따른 중장기 환율전망을 접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간의 시장 흐름에서 파악되는 미묘한 변화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한 주간 혹은 얼마간의 기간 동안 어떠한 변수에 신경을 쓰며 거래에 임하여야 할 것인가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자부합니다. 또 다시 환율은 1300원 근처라는 아주 중요한 레벨에 이르러 다음 방향성을 결정하고자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는 본 칼럼이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대한민국 적정환율 1300원"이라는 가설을 아직은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두 달간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짚어보면... 악하고 해로운 것도 다 그 쓰일 데가 있도록 조물주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때로는 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태풍은 망망대해를 한 바탕 휘저음으로써 그 바다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유지되게끔 해준다. 지난 여름 태풍이 없는 잔잔한 바다에 적조(赤潮)현상이 발생하여 한 동안 걱정을 했었는데, 극도의 침체장세가 외환시장에도 적조현상을 야기하였다.(8월 31일자 "외환시장의 적조현상" 참조). 업체들도 역외세력들도 잠잠한 가운데에 은행권의 자신없는 포지션 트레이딩만 이루어지면서 환율은 좀처럼 1280~1300원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당시 시장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1280원 아래였지만 연일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외환당국의 "1280원 방어작전"에 시장참여자들은 쉽게 굴복하였고, 막히는 아래쪽을 밀어 보겠다는 세력도 그렇다고 해서 위쪽을 강하게 시도하는 세력도 찾아보기 힘든 때라 필자는 다소 무식해 보이지만 씩씩하고 용감한 애술장군같은 시장주도세력이 출현하기를 기대했었다.(9월 4일 "외환시장엔 애술장군 없나?" 참조). 9월 첫 주에 일본 재무성의 엔화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집요한 구두개입으로 인하여 달러/엔 환율이 118엔 하향돌파를 시도하다가 일거에 121엔대로 치솟는 급등세를 보이면서 우리 환율도 위쪽으로 꿈틀거렸지만, 필자는 달러화가 국제외환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9월 7일 "달러, 급격한 U턴?" 참조). 달러/원 환율은 1300원이라는 벽에 부딪혀서는 좀처럼 그 레벨을 딛고 올라설 기력이 없었고, 달러/엔 또한 일본 당국의 구두개입만으로는 121엔이라는 두터운 매물벽을 뚫고 올라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121엔에서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한 달러/엔은 이후 116엔까지 추락하였다가 일본의 점심시간과 휴일도 잊은 지속적이고 염치없는 시장개입 덕분에 120엔대를 어렵사리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기대한 애술장군은 의외의 현상으로 현실화되었다. 9월 11일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 증시는 폭락세를 기록하고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값 또한 연일 급락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서울 외환시장에서만 달러값이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9월 12일 "테러 이후...환율 예측불허" 참조). 금년 상반기동안 달러/원 환율의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였던 엔화환율과의 연계고리가 끊기면서 많은 시장참여자들이 당황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보복 공습이 아프가니스탄에 가해지면 향후 테러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유사를 비롯한 달러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이 선취매성 달러 매수세를 형성하면서 환율이 오름세를 타자 수출업체들은 매물을 거둬 들이며 환율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종합지수 550선을 넘나들던 증시에서도 투매현상이 벌어지며 졸지에 주가지수가 460대로 추락하였다. 나라 바깥에서 터지는 악재에 너무나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풋옵션 매수에 열을 올리는 증시참여자들이나 달러매수에 열중하는 환시참여자들이나 모두가 "이 나라 경제가 망가져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포지션 구축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그 호들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9월 21일 "불안, 혼돈, 그리고 호들갑" 참조). 테러 직후 국제외환시장에서의 달러 급락세를 반영하는 듯 잠시 1282원대까지 폭락했다가 곧바로 상승세를 재개한 달러/원 환율이 1300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에 부닥쳐 주춤거리고 있을 때에 그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게 해준 것은 이번에도 역외매수세였다. 주말 뉴욕 NDF시장에서 환율이 1300원 위로 날아가 버리자 24일 월요일 아침부터 환율은 1300원대 안착을 이룬 뒤 전고점(7월 24일의 1314.50원) 돌파에 이은 1320원대 진입 가능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완강하게(?) 1280원대 아래로의 환율하락을 막았던 외환당국이 1310원대 마저도 올라설 수 없도록 구두개입에 나서며 국책은행을 통하여 달러매물을 내놓기 시작하자 시장 여기저기에서는 볼 멘 소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꼼짝달싹도 하지 말라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9월 25일 "무늬만 변동환율제" 참조). 10월 8일 마침내 벼르고 벼르던 미국의 보복공습이 아프가니스탄에 가해진 뒤 국제금융시장이 보여 준 반응은 역시 "이미 노출되었던 악재에는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뉴욕 증시를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이 오히려 상승세를 펼쳐 나가고 서울 증시도 연일 거액의 순매수를 보이는 외국인투자자들이 풋옵션 매수에 열중하는 개인들을 상대하며 장을 주도해 나갔다. 유가도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에 증시가 너무 튼튼한 모습을 보이자 공습 이후 불안과 혼돈이 가중될 것이란 예상 하에 구축한 달러 롱포지션들이 여기저기서 매물화되면서 환율은 속절없는 하락세로 진입하여 10월 셋째 주 월요일(15일) 오전 장에서는 1295원대까지의 추가하락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 장은 테러 이후 몇 주 동안 "불타는 롱마인드"로 무장되어 있던 은행권 딜러들이 갑자기 숏으로 광분(?)하면서 이루어진 장세도 아니다. 껄쩍지근한(?) 롱마인드는 아직도 많은 시장참여자들의 심중에 남아있지만, 차익실현 혹은 손절매 성격의 거액 매물과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자금 및 NDF Fixing 관련 매도세라는 실수급(實需給)에 기인한 시장 무게에 눌린 환율 하락장세인데, 필자는 체질적으로 과격하게 한 쪽 방향으로만 쏠리는 시장 움직임에는 거부감이 생기면서 1300원이라는 구심점(求心點)을 크게 벗어나는 환율 움직임은 기대하지 않는다. ◇왜 1,300원인가? 필자는 그 이유를 아시아권 통화들의 환율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으로 축약하고자 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만, 홍콩, 싱가포르, 심지어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서 좀 산다는 나라들은 모두 미국의 경기회복 여부에 따라 그 나라의 경제가 방향을 설정하게 되어있는데, 미국의 경기침체 가속화로 인한 달러화의 약세가 아시아권 통화들의 강세를 촉발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달러의 약세가 유로화, 스위스 프랑, 영국 파운드화 등의 강세로는 이어질 수 있으나 달러 약세를 위에 언급한 국가들의 통화가치 절상으로 논리를 연결시키기에는 무리라는 얘기다. 둘째, 아시아권 특히 일본과 한국의 재무관료들의 "투철한 사명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시장의 과격한 움직임을 체질적으로 반기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이 요동을 치고자 할 때에는 꼭 그들이 무슨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는다.(그렇지만 막상 대다수의 시장참여자들이 어떤 액션을 기대할 때에는 무참히 그 기대를 무산시키기도 한다. 작년 환율이 겁나게 치솟던 시절을 돌이켜 보라.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환율 급등세를 당국은 방치(?)했었고, 지금쯤은 한 마디 해주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 하에 달러 숏을 내다가 실려나간 세력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어쨌거나 일본의 "달러/엔 120엔 사수의지"는 완강해 보이고 그러한 일본 재무성의 노력은 달러/엔 환율의 Monthly chart를 지속형 패턴인 Flag pattern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110엔의 상향돌파 이후 형성된 꼿꼿한 깃대에 깃발 하나가 펄럭이고 있는 그림인데, 이번 달이나 다음 달 중에 124엔만 돌파하면 또 한 번 달러/엔은 영점조준을 끝낸 탄도가 130엔을 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280원을 그토록 막던 우리나라 외환당국이 이번에는 물러설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당국이 잠잠하기 위해서는 정말 국내외 증시가 거침없이 상승세를 이어 나가고 외국인들의 주식매수자금이 연일 1억불 가량 시장에 공급요인으로 작용해 줘야만 한다. 셋째, 10월 4일 1316원에서부터 8영업일에 걸쳐 20원 가량 환율이 떨어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수출업체를 비롯한 달러보유세력들이 그 물량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시기상조이다. 욕 먹을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업체들의 "달러 사랑"은 참으로 지극하고 애틋하다. 무슨 대단한 환율전망이나 분석기법이 있어서 달러를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와 작년 말의 겁나는 환율 급등장세, 두 차례에 걸친 "피눈물 나는 경험" 이후 달러는 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함부로 내다 팔 성질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가 환율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해서 짤릴 사람은 없지만 섣불리 매도헤지를 해 두었다가 환율이 위로 튀는 바람에 옷 벗은 사람은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강력한 달러보유심리 또한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넷째, 기술적인 측면에서 1300원은 참 애매한 레벨이라는 점이다. 5월 하순부터 8월 중순에 걸쳐 1275원 근처를 바닥으로 형성된 큰 이중바닥형(Double-bottom)과 지난 7월 24일의 1314.50원과 10월 4일의 1316원으로 형성된 이중천정형(Double-top) 패턴이 서로 부딪히고 있는데, 아직은 1280원 아래와 1320원 위는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레벨로 남아있다. 어느 패턴의 기세와 에너지가 강렬한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달러/원 환율은 1300원이라는 구심점을 두고 아래 위 10원 혹은 15원 정도의 변동폭을 두고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외에도 살펴 볼 변수들은 많다. 우선 미국에 대한 2차, 3차 테러 가능성이 상존하는 한 환율의 급락은 어렵다. 아홉 차례에 걸쳐 연초 6.5%에서 2.5%까지 떨어진 미국의 금리가 앞으로 더 떨어질 여지가 있는 점도 살펴야 한다. 그 동안의 달러 하락세에는 미국의 경기침체 뿐만 아니라 금리의 지속적인 하락이라는 요인도 작용해 왔다고 본다면, 달러 금리가 더 떨어질 룸이 없다고 본다면 달러의 지속적인 하락예상 또한 다소 조심스러워지는 시점이다. 단기간의 환율 움직임에서 수급(需給)을 당해 낼 장사는 없는데, 일단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급한 매물들(NDF Fixing 관련 매도세, 외국인 주식매수자금)의 소화가 끝난 뒤에는 다시 무역수지를 비롯한 경제 펀더멘털 요인과 테러사건의 전개과정 등 뉴스를 쫓아가는 장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흥분하면 다친다고 오늘 칼럼의 제목을 붙인 이유는 어영부영 우리가 익숙한 레인지의 바닥 가까이에 환율이 접근했기에 최근 일주일 남짓 동안의 환율 움직임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