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1년만에 정몽구 틀 벗은 정의선…"뚝심에서 혁신으로"

by신민준 기자
2021.10.11 16:15:33

오는 14일 현대차그룹 회장 취임 1년 맞아
코로나 악재 속 취임…회피 대신 정공법 선택
현대차·기아,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 기록
자동차 제조→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탈바꿈
순환출자 고리 해결 등 지배구조 개편 향후 과제

[이데일리 신민준 기자]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나가고 그 결실을 전 세계 모든 고객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작년 10월 14일 그룹 회장 취임사 발췌)

정의선 현대자동차(005380)그룹 회장이 오는 14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부친(父親)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세계적인 자동차제조기업 반열에 올려놨다면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세계적인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현대차그룹)
정 회장은 작년 10월 14일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몸살을 앓는 이례적인 악재 속에서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의 주력인 자동차산업이 전 세계 주요시장에서 봉쇄(록다운) 조치 등으로 심하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대외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웅크린 채 상황이 개선되길 기다리는 것이 기업의 보편적인 생리지만 정 회장은 반대로 정공법을 선택했다.

현대차는 신형 투싼을 비롯해 △아반떼 △스타리아 △제네시스 G80 △제네시스 GV70 등 신차들을 예정대로 출시했다. 기아도 △쏘렌토 △카니발 △K8 등의 신차를 선보였다. 올해 들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브랜드별 선도 모델인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 제네시스 GV60을 잇따라 내놨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 전망이 불안한 만큼 현대차와 기아가 신차 출시 시기를 늦출 것으로 봤지만 현대차그룹은 예상을 뒤엎는 선택을 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전 세계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26.4% 증가한 203만1193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매출(57조7170억원)은 22.3% 늘었고 영업이익(3조5460억원)도 143.6% 증가했다. 기아 역시 올해 상반기 차량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0% 증가한 144만4107대였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6%, 334.8% 늘었다.

정 회장이 정공법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룹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제가 있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 권역별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했고 회장 취임 이후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주요 권역별로 시장 상황에 맞게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신속하게 실행하는 체제가 구축되면서 현대차와 기아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정 회장이 과감하게 시작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빠르게 시도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평상시 강조해온 ‘고객’과 ‘품질’이라는 키워드로 대응한 점도 한몫했다. 정 회장은 위기일수록 고객이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고 품질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역설했다. 이는 조부와 부친의 가르침에 기인한 바 크다. 정 회장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조부이자 범현대그룹의 창업주인 ‘불도저’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과 부친인 ‘뚝심’의 정몽구 명예회장을 꼽는다. 정 회장이 성장 과정에서 직접 보고 겪었던 조부와 부친의 추진력과 끈기가 경영인으로 자리 잡는데 훌륭한 지침이 된 것이다.

정 선대회장은 매일 아침 가족들과 청운동 자택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 회장은 고등학생 시절 3년가량 조부와 함께 살며 아침밥을 함께 했다. 정 회장은 2019년 칼라일그룹 초청 대담에서 “그때 조부께서 수차례 말씀해주시기를 ‘시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며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의미를 약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회상하며 조부의 조언을 경영 판단에 참고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 명예회장과는 어릴 적부터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오르면서 부자간 정(情)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은 정 회장에게 항상 품질에 대해 강조하며 “성실하고 건강하게 일하라”는 조언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정 회장은 조부와 부친이 마련한 기반을 발판 삼아 현대차그룹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고 있다. 로보틱스와 도심항공(UAM), 자율주행, 친환경차 등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세계적 로봇기업 보스톤 다이내믹스를 작년 12월 인수한 뒤 제조와 물류, 건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룹 내 조직인 로보틱스랩도 웨어러블과 인공지능(AI) 서비스 로봇, 로보틱 모빌리티 등 인간과 공존하는 로봇을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UAM 대중화 기반도 다지고 있다. 2028년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 2030년대에는 인접한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선보인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아이오닉 5 기반 로보택시를 활용한 완전 무인 자율주행 서비스를 2023년에 시작할 예정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전 세계 판매 차량 중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 모델 비중을 2040년과 2035년까지 각각 80%, 9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순항하기 위한 과제도 남아 있다. 현대차그룹은 순환 출자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큰 틀에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이 고리를 끊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기아에서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모·자회사 관계를 해소하고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지난 6월 기준)에 불과하다.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7.15%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상속이 이뤄질 상황은 아니고 상속을 하더라도 막대한 규모의 상속세 문제가 걸려 있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등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활용해 기아차로부터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취득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전부터 준비된 리더의 모습을 보여왔다”며 “취임 후 1년간 보여준 미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은 앞으로 현대차그룹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