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 10명 중 7명 수면장애 겪어…운행중 졸음 13.2%

by김성훈 기자
2017.07.17 09:00:00

가톨릭대 병원 홍승철 교수팀 연구결과 40.1% 불면증 호소
운행 중 졸음 증상도 13.2% 달해..수면의 질 불량 68.4%
"불면증 수면 무호흡증 선별검사 시행해 치료해야"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 시내버스와 광역버스가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무연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김무연 기자] 지난 13일 오전 10시쯤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지나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던 간선 시내버스가 갑자기 한적한 길모퉁이에 멈췄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는 승객들의 시선이 운전석을 향하자 운전기사 박모(54)씨는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3~4분쯤 지났을까, 비상등을 켠 버스 유리창 너머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막 세수를 마친 듯 얼굴에 물기가 흥건했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죄송하다”며 승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요즘 같이 더울 때는 낮에 잠이 올까 껌을 씹기도 하고 일부 기사는 졸릴까봐 아예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졸음운전’으로 빚어진 참사를 계기로 장시간 노동과 과로 등에 시달리는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재조명 받고 있다. 특히 불규칙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운전기사 10명 중 8명은 불면증 등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 조사 결과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는 광역급행버스(M5532) 운전기사 김모(51)씨는 사고 전날인 8일 오전 5시에 첫 운행을 시작, 왕복(오산 갈곶동↔서울 사당역) 6차례 운행을 거쳐 오후 11시 40분쯤 퇴근했다.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이튿날 오전 6시에 출근한 김씨는 7시 15분에 첫 운전대를 잡은 뒤 3번째 운행을 하던 중 사고를 냈다.

정부는 지난 2월 버스 운전기사들의 휴식 보장을 위해 2시간 이상 연속 운행하는 운전기사는 15분 이상, 마지막 운행으로부터 최소 8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및 규칙을 시행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버스회사 대표는 영업정지나 과징금 180만원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운전기사들은 이같은 법규정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조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내버스 운전기사 황모(48)씨는 “퇴근과 동시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씻고 식사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 수면 시간은 채 5시간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버스 운전기사들의 불면증 척도 (자료=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운행 중 졸음 등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운전기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승철 교수팀이 경기 지역 소재 버스 운전기사 304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0.1%(122명)가 불면증을 호소했다.

불면증을 심하게 겪는 운전기사(중등도·중증 불면증)는 전체 10.2%(31명), 수면무호흡증 고위험군도 27.6%(84명)로 조사됐다. 불면증으로 운행 중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는 버스 운전기사도 13.2%(40명)에 달했다.

홍 교수는 “버스 운전기사의 68.4%(208명)가 평소 수면의 질이 불량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며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 불면증과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운전기사를 대상으로 선별 검사를 시행하고 이에 따른 진단과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찬무 공공 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은 “경부고속도로 사고와 관련, 운전기사가 처벌을 받는 일은 불가피한 과정이다”면서도 “운전기사들이 과도한 업무 속에 충분한 휴식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도록 후속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