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성탄선물" Vs "억지 탄핵 무효"…헌재 앞 엇갈린 함성

by사건팀 기자
2016.12.17 19:44:08

광화문광장 65만 촛불, "'탄핵 이유없다'는 朴 후안무치"
퇴진행동 "신속한 탄핵인용이 국민 고통 최소화"
보수단체 "억지 탄핵, 국민선동 종북좌파 세력 척결해야"

‘박근혜 즉각 퇴진! 공범 처벌·적폐 청산의 날’ 촛불집회가 열린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유태환 유현욱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심리에 착수한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시차를 두고 탄핵안 기각과 인용을 촉구하는 함성이 엇갈렸다. 촛불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신속한 심리로 하루빨리 탄핵심판을 인용해야 한다”고 촉구한 반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들은 “탄핵 무효”를 외치며 기각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은 양측의 충돌을 우려해 경비병력 228개 중대(1만 8200여명)를 배치해 안전관리에 나섰는데 다행히 우려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후 두 번째 주말인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서울 65만명(오후 8시 30분 기준)을 포함해 전국 77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전날 박 대통령 측이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탄핵 이유가 없다”고 밝힌 데 대해 “국민과 싸우겠다는 것” “기가 막힐 노릇”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궤변” 등 비판을 쏟아냈다.

박석운 퇴진행동 공동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퇴진하라는 게 주권자의 명령”이라며 “헌재는 하루빨리 탄핵을 인용하라는 게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사유를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는데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세월호 참사를 두고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데 지휘권을 다하지 못한 대통령이 할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이제 겨우 촛불혁명의 출발점에 선 것이고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며 “촛불 시민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박근혜 즉각 탄핵을 헌재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 6시 40분쯤 ‘어둠의 겨울 공화국’을 끝내는 1분간 촛불 소등 행사도 개최했다. 사회자는 “대한민국은 아직도 겨울공화국”이라며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간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한 촛불이 되자는 마음을 모아 소등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본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오후 7시쯤부터 4개 경로로 나눠 청와대와 총리 공관, 헌재 방면으로 촛불행진을 이어갔다. 법원은 전날 퇴진행동이 경찰의 금지·조건통보에 대해 신청한 집행정지를 일부 받아들여 총리 공관 100m 앞(우리은행 삼청동영업점 앞)과 헌재 100m 앞(안국역 4번 출구)에서 오후 10시 30분까지 집회와 행진을 허용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등 청와대에서 200∼400여m 떨어진 곳도 오후 10시 30분까지 허용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상징하는 구명조끼를 입고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 관저로 행진했다. 이들은 ‘박근혜표 정책’을 추진하는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아바타’에 불과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고(故)이재욱 학생 어머니 홍영미씨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여전히 변명과 거짓말,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참담했다”며 “진실 은폐에 가담한 황교안 총리는 가증스러운 대통령 놀음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열린 사전 문화행사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낮 12시부터 ‘헌법재판관에게 국민엽서보내기’ 행사를 열었다. 환경운동연합은 시민들이 작성한 엽서를 다음 주 20일쯤 헌재에 보낼 예정이다.

성탄절을 일주일 앞둔 만큼 산타클로스 분장도 등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구성된 모임 ‘박근혜 퇴진 청년 산타 대작전’은 광장을 돌며 어린이들에게 모자와 세월호 리본, 손편지 등을 나눠줬다. 버스 운전을 하는 한민식(70)씨도 이날 산타 복장을 하고 집회에 참여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이라 적힌 손팻말을 든 한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지만 민간인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데 분이 나 탄핵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린 맞불집회에서 보수단체와 일부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등 보수단체들은 촛불집회에 맞서 이날 오전 헌재 앞에서 대규모 ‘맞불집회’를 열었다.

박사모·박정희대통령육영수여사숭모회 등 50여개 단체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소속 회원들은 이날 오전 11시 헌재 인근인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 삼일대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집회 무대 앞에 박한철 헌재 소장의 사진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정의로운 심판하라’, ‘태극기 휘날리면 촛불은 꺼진다’고 쓴 펼침막을 붙인 채 “탄핵 무효” 등 구호를 외쳤다. 또 “좌파 세력들은 헌재 협박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

참석자들은 손에 태극기와 장미꽃을 들거나 ‘탄핵무효’ ‘계엄령 선포하라’ 등 피켓을 앞세우고 박 대통령이 ‘억지 탄핵’을 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현장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얼굴을 함께 새긴 펼침막도 등장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얼굴을 새기거나 ‘황교안을 지켜내 종북 세력 막아내자’ 등 글귀를 새긴 펼침막도 걸렸다. 주최 측은 박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탄원서 서명대를 설치하고 태극기를 나눠주는가 하면 상인들이 송이당 1000원에 장미를 파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집회를 마치고 오후 1시쯤 행진을 시작한 이들은 안국역 사거리와 동십자각을 지나 청와대 인근 국립민속박물관 앞까지 이동한 뒤 반환지점에 태극기와 장미꽃을 두고 오는 ‘백만송이 장미 대행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진 도중 가수 심수봉씨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를 틀었다.

이후 안국역 사거리로 돌아온 이들은 정리집회를 열었다.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은 “탄핵을 못 막아서 이 자리에 왔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더 많은 비리가 있는데 그때 대통령을 탄핵했느냐”며 탄핵 무효를 주장했다.

김모(68)씨는 “촛불이 뭉쳐 힘이 생겼듯 대한민국 애국 보수도 이제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며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성모(62)씨는 “국민들 선동하는 종북세력 척결을 위해 우리가 제대로 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예정 시각보다 조금 이른 오후 5시 20분쯤 자진 해산해 우려했던 촛불집회 측과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 앞 세종로소공원에는 보수단체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이 탄핵무효 국민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가 의결한 탄핵은 잘못된 것이고 헌재가 반드시 기각할 것”이라며 “좌파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박 대통령을 버렸다고 선동했지만 아직도 대통령을 버리지 않은 시민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재판관들이 흔들리지 않고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애국 시민들이 단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주최 측은 일주일 뒤인 성탄절 전야인 24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야광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열겠다고 공지하고 이날 참석자들의 참가를 독려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 참석자가 1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3만명으로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