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양희동 기자
2014.06.29 15:30:00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트라우마’는 과거 끔찍한 경험이 만든 정신적 상처를 말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정신분석학 용어지만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누구나 아는 일상어가 됐다. 이 용어를 각인시킨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건설 분야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1994~1995년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올해 초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등을 거치면서 한국인은 ‘부실시공’이라는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롯데건설이 서울 잠실에 짓고 있는 123층(555m) 높이 초고층빌딩인 ‘제2롯데월드’에 대한 세간의 우려도 부실시공 트라우마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메가 기둥 균열과 인근 석촌호수 물 빠짐 현상, 잇따른 공사장 사고는 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미국 뉴욕의 명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은 83년 전인 1931년 완공됐지만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의 초고층 건축기술은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발전했다. 따라서 최첨단 공법으로 짓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분명 안전할 것으로 믿는다.
문제는 제2롯데월드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서울시와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이 시민들이 가진 부실시공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메가기둥 균열로 구조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서울시는 정밀구조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문제가 없다”는 중간결과만 짧게 발표한 후 최종 진단 보고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올해 초 연이어 발생한 화재 등 공사장 사고 직후 초고층 부분의 안전관리 실태를 직접 점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롯데건설 주관으로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등 점검기관이 발표했다. 이 역시도 “공사장 안전이 미흡했지만 조치는 모두 끝냈다”는 ‘사후약방문’식 해명에 그쳤다.
심리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당사자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안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줘야한다고 말한다. 서울시와 롯데건설은 시민들이 부실시공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동안의 점검 결과를 충분히 설명하고 사후 관리 과정을 가감없이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