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500만이 바꾼 추석 풍경…'미니 선물세트·음식 없는 차례상'

by김보영 기자
2016.09.14 13:00:00

1인가구 맞춤형 식품세트 등장…간편 포장·높은 가성비
차례·벌초 등 명절행사, 간소화 흐름에 대행 서비스 인기
벌초대행 2012년 1.9만건서 올해 2.5만건으로 급증
실속·효율 시대흐름…"가족 파편화·불황 장기화 단면"

한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된 5만원 이하의 과일 선물세트.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전상희 기자]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대학 교직원 심모(29)씨에겐 올 추석 거래처에 받은 3만 9000원짜리 ‘1인 맛집 음식 선물세트’가 최고의 명절 선물이다. 심씨는 “그동안의 명절 선물들은 혼자 사는 사람이 처리하기에 부피만 크고 값만 비쌌다”며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여파 때문이겠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선물이 간소화되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생활 방식과 제도의 변화가 명절을 마주하는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는 화려한 포장의 값비싼 명절 상품 대신 작은 포장과 가성비를 중시한 간편한 명절 상품들을 대거 출시하고 있다. 시민들도 합동 차례를 지내거나 벌초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등 실속을 중시하는 모습이다.

1인 가구나 홀로 밥을 먹는 ‘혼밥족’들이 증가하면서 명절 선물세트의 구성과 포장 단위도 변화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포장은 줄이고 가격 대비 성능에 충실한 선물세트들을 내놨다.

신세계백화점은 영광 법성포에서 생산된 조기 3마리로 구성한 굴비 세트를 처음 선보였다. 기존에 판매되던 굴비세트는 10마리나 20마리가 한 세트다.

신세계백화점은 한우 맞춤선물 세트의 물량도 30% 가량 늘렸다. 이 세트는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출시한 상품으로 개인의 취향과 다양한 가족단위를 반영해 소비자가 원하는 고기의 부위나 등급 중량을 선택해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편의점 업계도 추석연휴 기간 1인 가구를 위한 상품을 집중 공략했다.

GS25는 식사 대용으로 즐길 수 있는 냉동 군고구마 ‘설마’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GS25 관계자는 “20개입 2만 9900원으로 시중에서 낱개로 구매하는 것보다 20% 가량 가격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미니스톱은 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정준하 육개장 칼국수’와 ‘하우돈 교동 국내산 반 마리 삼계탕’ 등 간편 조리식품들을 선보였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는 사람들. (사진=연합뉴스)
주변 친지와 함께하던 전통적인 명절 행사는 갈수록 간소화하고 있다. 납골당에 마련된 간편 차례상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의 한 납골당 관계자는 “추석 등 명절에는 납골당에서 합동 차례상을 준비해놓는다. 가족들은 음식을 따로 준비해올 필요 없이 고인의 이름을 적고 묵념하거나 헌화하는 등 방법으로 차례를 지낸다”며 “추석 당일과 그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족들과 납골당에서 차례를 지냈다는 남모(56)씨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차장까지 간이 천막을 치고 차례상이 마련됐다”며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5분 정도 차례를 지내고 빨리 나왔다”고 말했다.

묘지 벌초는 대행 서비스가 큰 인기다. 전국산림조합에 따르면 2012년 1만 9564건이던 벌초대행 서비스 이용건수는 2013년 2만 1692건, 2014년 2만2271건, 2015년 2만 3656건 등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림조합은 현재까지 예약·접수 건수를 바탕으로 올해 이용건수를 약 2만 5000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진태 산림조합 녹색문화추모사업단 과장은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와 벌초할 인력이 부족해진 이유가 크다”며 “시간적 여유나 비용문제, 안전사고 문제 등으로 이용이 매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이 같은 신풍속은 김영란법 시행이나 기술의 발달 등의 변화가 1차적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그 기저에는 가족 형태가 파편화되고 불황이 장기화된 사회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