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동욱 기자
2014.08.16 11:47:15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들은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다. 당한 것도 억울한데 어디 대놓고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개그 프로그램 소재인 줄로만 알았던 보이스피싱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당할 줄이야. 이런 사실을 참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다.
보상이라도 확실하게 받으면 그나마 낫겠는데 현실은 대포통장에 남아 있는 돈을 몇 개월 뒤 돌려받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법적 소송을 통해 은행으로부터 피해액을 보상받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포통장 하나에 연루된 피해자가 많으면 상황은 더 꼬인다. 서로 피해 정도를 따져 쥐꼬리만큼 남은 돈을 또 갈라야 한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누구에게든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우선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어렵다. 애초 본인의 금융정보를 피싱 조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사기에 넘어가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단순히 개인의 실수로만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은행의 대응에도 매년 평균 5600명 정도는 피싱사기에 걸려든다.
최근 ‘판치는 금융사기’란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보이스피싱 피해자 10여 명을 인터뷰했다. 대학생부터 출산을 2개월 앞둔 임산부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피싱 사기단의 말에 넘어가 OTP(일회용 비밀번호) 번호를 알려주거나 다른 금융정보를 알려줘 돈을 뜯겼다. 사기조직이 스마트폰에 심어 둔 악성코드(해킹수단)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엔 피해자도 손을 쓰기가 어렵다.
은행은 피싱 사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러나 은행 문은 허술했다. 중국에 있는 피싱 조직이 국내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거액의 돈을 빼 가도 은행 대부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어떤 은행은 큰돈이 몇 차례에 걸쳐 빠져나가고 한참 뒤에서야 피해자에게 연락한 사례도 있었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더 안전한 거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건 은행 몫이다.
그러나 정작 시스템은 차치하고 현장에선 기본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통장을 발급하면서 통장양도의 불법성에 대해 안내하거나 OTP를 발급하면서 유출 위험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은행은 보기 드물다. 기본이 무너지면서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사기의 매개로 활용되는 대포통장은 우리 사회에 연간 5만 개 가량이 거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