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22]"제약 있을 수 있죠..한계란 깨는 거니까"

by김미경 기자
2012.09.12 11:10:40

한경애 코오롱인더스트리FnC 캐주얼 BU 이사
"패션에 '소통의 개념'을 입히다"
재고의류 리디자인해 '래코드' 브랜드화
남성 편집숍 개념도 국내에 처음 들여와

[글=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사진=한대욱 기자] 안 팔리는 옷은 의류업체에 있어 큰 골칫덩어리다. 백화점 시즌 오프 세일에서도 소비자에게 낙점되지 못한 옷들은 대형 아웃렛이나 상설할인매장에서 이월상품으로 판매된다. 그래도 안 팔리는 옷들은 바로 소각장 행이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천덕꾸러기’ 옷들을 새 옷으로 탈바꿈시켜 시장에 내놓는 파격을 시도해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캐쥬얼 BU 부문 한경애 이사(51) 얘기다. 모두가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에 집중할 때 그는 재고에 리디자인의 개념을 입힌 래코드(re;code) 브랜드를 내놨다. 그의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국내서는 다소 생소한 명칭이다. 한 이사는 국내외 경제 및 패션 흐름 등을 파악해 새 브랜드를 선보이거나 기울어져 가는 옷을 회생시키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남성 편집매장 개념을 국내 처음 선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코오롱 FnC부문에서만 연간 소각돼 사라지는 옷은 약 40억 원어치(정상 소비자가격 기준)에 달한다. 모두 3년 차 이상 된 재고 옷들로 이들 옷은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불태워 없어진다.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멀쩡한 옷들을 이런 식으로 버려야 할까?” 한경애 이사의 ‘래코드’의 출발은 이 같은 물음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처음엔 난감했지만 ‘낭비되는 옷들을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자’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하자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옷을 해체해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다.

우선 소비자에게는 연간 수십억원의 옷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소각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렸다. 옷의 해체작업은 지적장애인단체인 ‘굿윌스토어’가 맡았다. 제품 디자인 역시 자금력이 없어 자립이 어려웠던 독립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했다.

지난 3월 론칭한 이 브랜드는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반응도 좋다. 백화점에서는 새로운 방식과 가치 소비 개념을 담고 있는 래코드 팝업매장 오픈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편이다. 브랜드를 이해하는 고객들의 방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한 이사는 “래코드는 옷을 만드는 자체가 사회환원”이라면서 “장애우들에게 기부가 아닌 일자리를 제공한 것, 독립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과정으로 이들에게 가능성과 기회를 준 것처럼 앞으로도 래코드는 매 시즌 새상품을 내놔 고객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상학과를 졸업한 한경애 이사는 나름대로 디자이너로서 정석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여성복 대신 남성복으로 눈을 돌렸다. “그 당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간 천편일률적이었던 남성복 시장에 터닝 포인트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차별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의 확신은 맞아떨어졌다. 2005년 남성복 시장에서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코오롱FnC 남성복 브랜드 ‘시리즈’였다. 그는 “시리즈는 기존 남성복 시장에서 남성 편집숍이라는 큰 패션의 맥을 짚은 브랜드로 업계의 반응을 얻고 있다”며 “다양함을 보고 마켓의 변화를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그는 래코드와 시리즈의 성공을 ‘앞선 기획력’과 소비자들과의 ‘디테일한 소통’으로 보고 있다. 한 이사는 “6년 전 남성복 브랜드 시리즈가 ‘편집숍’ 으로 갈 때 다들 안 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그야말로 편집숍 대세”라며 “업계에서도 래코드가 단기적인 프로젝트에 불과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글로벌 SPA브랜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인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라고 귀뜸했다.

“여성이라서 제약은 있을 수 있지만 한계성은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다. 전체를 봐라. 그러면 두려움은 곧 사라질 거다.”

그녀 나이 당시 36세. 그는 곧 마흔이 될 자신을 위해 스위스에서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때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경험(라이브러리)들을 적재적소에서 꺼내 쓸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자극을 주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대충은 없다. 때문에 상사로써나, 선배로써 쉽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늘상 디자인은 물론 제조, 유통, 시장조사, 조직 등을 포괄하는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 그는 요즘에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백화점 MD 및 협력사 관계자에게 패션 트렌드 자료를 정리해 만들어 공유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료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스스로 그 방식을 찾아가는 것도 삶의 과제라고....

사진=한대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