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⑤관치교육에 종지부를 찍자

by안근모 기자
2008.03.05 11:03:41

[이데일리 안근모기자] "저도 내키지는 않지만 외고를 보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초등학교 3학년짜리에게 무슨 창의력 수학이니 하는 과외까지 시키냐'는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30대 학부모가 '그것도 모르냐'고 힐난하듯 대답한다.

초중등학교, 아니 유치원까지 포함한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을 꼽는다면 단연 외고, 혹은 특목고다. 외고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성공보증서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대원외고가 배출한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합격자 수는 무려 296명에 달한다. 명덕외고가 264명, 대일외고도 231명을 SKY에 진학시켰다.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의 5분의 1이상은 특목고 출신이었다.

지난해 신임 사무관 297명 가운데 23%인 69명이 역시 특목고 출신이다. 사법고시 합격자의 17%도 특목고를 나왔다. 사시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학교 5위까지가 모두 서울지역 외고였다.

평준화 이전 시대보다 더 한 명문고 현상이다. 비싼 돈을 들여 창의력 수학 과외를 받은 학생이 특목고에 들어가기가 더 유리하다는 점에서 현행 평준화 정책은 부자를 위한 정책이다.

학부모들은 본능적으로 외고입학이 좋은 대학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곧 좋은 일자리, 나아가 안락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신문보도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을 수치상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다.
 

지난 1969년 중학교 평준화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경쟁억제'에 초점이 모아져왔다. 학생들의 교육고통을 줄여주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것으로, 사회불만을 단기적으로 무마하려는 저급한 정치행위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 제도와 정책은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은 오히려 극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지난 2002년 박세일 당시 서울대 교수는 논문에서 우리 교육이 길러내야 할 21세기 인재들은 △기술, 경영, 인문,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이 있는 전문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덕성과 소양을 갖춰 남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사회능력 △스스로 힘으로 공부할 수 있는 평생학습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우리 교육제도는 이런 인재를 양성하는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당면한 교육개혁의 기본 방향은 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되살리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법률이 정한 대로,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대중교육의 한편으로 △국가발전을 이끌 인재를 육성하는 엘리트 교육을 추진하는 '이원적(二元的)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본토의 '오륀지' 발음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아가는 인성이다. 학교가 학생의 사회능력을 고양하는데 힘을 기울일 경우 매년 GDP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법질서 위반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경감할 수 있다.

소수이더라도 공교육이 전문능력의 인재를 양성해낸다면 국가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인적 자원의 지적·기술적 창조능력과 세계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공교육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면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시스템을 현행 공급자 중심에서 교육 수요자 중심으로 탈바꿈 시켜야 한다. 편협하고 획일적으로 짜놓은 틀 안에 모두를 강제로 편입시키던 체제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능력과 적성에 맞게 교육 과정과 내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정책에서는 평준화를 폐지할 것인지, 우열반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겠으나, 학생에게 자율적인 선택권을 부여하는 수요자 중심 교육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너는 우수반, 너는 열등반" 식으로 강제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우수반, 나는 기초반" 식으로 자율선택토록 하는 것이다.

교육체계가 수요자 중심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개별 학교의 자율과 학교간의 경쟁이 필수적이다. 경쟁이 없으면 학생의 수요에 부응할 유인이 없으며, 자율이 없으면 경쟁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간의 경쟁도 양성화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경쟁할 수 있는 학습기회를 다양하고 충분하며 균등하게 제공한다면 굳이 경쟁을 감춰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가 학생들의 경쟁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문제를 쉽게 내고, 순위매김을 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엄연히 상존해 있으며 이에 따르는 고통도 전혀 경감되지 않고 있다.


관치교육(官治敎育)의 청산이 열쇠다. 박세일 교수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기업가적 창의와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데는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면서 그 중 하나로 "교육에 대한 정부의 과다 규제와 과잉 개입으로 나타나는 관치교육"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교육정책에 대한 체계적 과학적 평가를 받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정책을 개선할 것인지, 어떻게 정책실패를 줄일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됐으며, 이로 인해 교육실패가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는 지적이다.

이주호 KDI 교수 등은 지난 2002년 '학교교육 개혁 청사진' 보고서에서 "정부가 자율을 주지 않은 채 통제를 통해 학교의 질적 제고를 추구한 결과 또다른 획일성만 초래했다"면서 "학교를 학교의 진정한 주인인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교육 개혁이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을 의미있게 줄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팽창하고 있는 사교육 산업은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을 반영한 것이다. 사교육 붐으로 표출된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그 자체로 거대한 국가에너지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는 지난 2004년 '한국사회의 교육열과 과외수요 창출요인' 보고서에서 "교육열은 기본적으로 자녀애와 성취욕구의 발로이며, 과외수요도 그러한 맥락에서 발생한다"면서 "따라서 교육열을 억제하고 과외수요를 잠재우려는 의도에서 강구되는 대증요법 차원의 단기적 대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뜨거운 교육열과 막대한 사교육 투자가 엉뚱한 곳으로 발현돼 낭비된다는데 있다.

지난 1999년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마련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식관련 투입량은 선진 5개국의 90%에 달하고 있으나, 그 성과는 선진국의 33%에 불과하다.

교육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우리 경제가 누릴 수 있는 성과는 막대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