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두 영웅, 돌아와 인간을 말하다
by한국일보 기자
2007.02.14 12:00:00
''록키 발보아'' ''아버지의 깃발''… 낡고 민망해도 "자신을 믿어라" 메시지
냉정한 시선 ‘전장’ 으로 돌려 참상 고발
[한국일보 제공] 나이를 먹는 다는 것, 늙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악스럽게 단 한번도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 없는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마 깊이를 더해 간다는 뜻일 게다. 그 모습이 냉소적이면 어떻고, 자기 연민이면 또 어떤가.
젊은 날 정글과 사각의 링, 황야를 누볐던 실베스터 스탤론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크린에서 어눌한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던 근육질의 람보나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악당의 가슴에 총을 쏘는 ‘황야의 무법자’는 이제 추억일 뿐. 지난해 환갑을 보냈고 희수(喜壽)를 맞은 두 스타 배우가 감독으로서의 우리에게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 비웃는다. 영화 속의 사람들도, 영화 밖의 사람들도. 록키가 다시 링에 오른다니. 30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배가 튀어나오고, 머리가 허연 늙은 옛 애인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 그가 글러브를 끼고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에서 노인의 정사장면을 보는 만큼이나 민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록키와 상대하는 챔피언 메이슨 딕슨(안토니오 타버)만큼 애처로운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30년 전 무명의 복서로 일약 세계 정상에 오른 록키에게도, 뉴욕 뒷골목을 배회하다 록키로 스타가 된 실베스터 스탤론에게도 그날은 잊기 힘든 영광의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추억은 움직여 지금 이 자리로 다시 걸어 나올 수 없다. 늙는다는 것은 낡았다는 의미이고,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그냥 그것이 되고 만다고 록키의 처남이자 친구인 폴리(버트 영)은 말했다.
그렇게 보면 록키는 이제 작은 레스토랑의 주인일 뿐이다. 그가 30년 전 처음의 <록키> 흔적을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고, 이제는 중년 부인이 된 그 때 불량 소녀 리틀 마리(제랄딘 휴즈)를 만나고, 죽은 아내 애드리언의 모습을 떠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록키는 그게 아니라며 60의 나이에 글러브를 낀다. 이유를 그는 아직 꿈과 열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뭘 증명하겠다는 거야” “너 미쳤어”라는 아들과 친구의 말에 그는 “선수는 싸운다” “너도 늙어봐라” “늙을수록 아쉬움이 큰 게 인생이야”라고 외친다. 둔해진 몸놀림과 약해진 주먹은 어쩔 수 없음을 그도 인정한다.
그래서 16년 만에 여섯번째로 찾아온 <록키 발보아>도 화려한 부활이나 억지 승리보다는 ‘맞고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자신을 믿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선택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상투적이고 통속적이며 자화자찬으로 채워진들 또 어떤가. 14일 개봉.
냉소는 나이를 먹어도, 감독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그라고 왜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애착이 없을까 만은 감독으로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찌감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나 <스페이스 카우보이>보다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같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인간들의 삶을 성찰할 때 그의 날카롭고 냉정한 시선은 깊이를 더한다.
그가 이번에 눈길을 돌린 곳은 전장. 성조기를 꽂은 6명의 미군 병사를 담은 한 장의 사진이 그를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인 1945년 2월 우리에게는 ‘유황도’로 알려진 일본 남쪽 태평양의 작은 섬 이오지마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 남아 영웅이 된 사진 속의 3명의 병사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인디언 출신 아이라 헤이즈(아담 비치), 통신병 레니 개그논(제시 브래포드)의 회상을 통해 ‘그날의 진실”과 전장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들이 회상하는 전장은 지옥 그 자체이다. 총 맞은 동료를 버리고 가는 모습에서 ‘전우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고, 애도의 말로 쓰는 ‘고귀한 희생, 장렬한 전사’라는 말은 마이크(배리 펩퍼) 병장이 동료의 죽음을 보고 외친 “이건 개죽음이야”에 의해 가차없이 팽개쳐 진다.
파도에 쓸려 내려가는 시체들, 시체를 깔고 지나가는 탱크.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뜯어 먹힌 브래들리와 가장 친한 전우 이기(제이미 벨). 목이 잘린 병사. 누군가 외쳤다. “이건 완전 도살장이야.”
병사들 스스로 ‘비열한 전쟁’이라고 말한 그날의 전투와 사진 속 주인공들의 갈등을 통해 영화는 ‘참 모습 그대로 기억하자’고 말한다.
전쟁이 얼마나 한 인간의 시간과 삶과 희망을 앗아가는지 보여준다. 조작된 영웅주의에 냉소를 보낸다. 그리고 조작된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수없이 정의란 총을 쏘았던 젊은 배우 시절을 반성이라도 하듯 그 아픔과 눈물을 적의 시선으로도 보길 권한다. 그날의 비극을 일본군의 시선으로 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함께 만든 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임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