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by박철근 기자
2024.08.04 18:11:17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연일 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하는 가운데 이커머스 업계도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로 뜨겁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판매자 정산대금 미지급 규모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티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2745억원(7월31일 기준)으로 6~7월 거래분까지 포함하면 최소 3배인 8235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의 원인을 두고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의 잘못된 경영방식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허점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자율규제의 틀 속에 있던 이커머스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 되면서다.
국회와 정부는 이커머스를 규제의 틀 속에 가두기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당연히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소비자와 판매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자율규제체제가 허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티메프 사태의 핵심인 플랫폼과 판매자간 정산문제는 개선이 불가피하다. 현행 체제상 플랫폼이 정산주기를 일방적으로 정하면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려는 판매자들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정산주기와 정산대금 유용 가능성을 잘 연결시키지 못해 티메프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정산주기 관련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플랫폼과 소비자간 분쟁이 발생하면 책임문제 보완은 가능하지만 플랫폼과 판매자의 관계는 별도 입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봤다.
티메프 사태로 이커머스에 대한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특히 대부분의 이커머스가 아직 흑자구조로 전환하지 못하고 판매자에게 지급할 정산대금을 경영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은 당연하지만 이커머스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규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칫 규제를 강화하면 이커머스 생태계도 몇 군데의 공룡기업 중심으로 재편돼 소비자와 판매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일각에서는 규제만을 위한 규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인 해외 이커머스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티메프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플랫폼이라는 명목으로 규제의 올가미를 씌우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일부 사업자가 분탕질 한 문제로 이커머스 생태계 전반을 옥죄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소비자와 판매자, 플랫폼이 모두 안심하고 상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