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자급률 제고`는 착각…필수농산물 비축제가 우선"
by이명철 기자
2022.05.29 15:30:05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이정환 GS&J 이사장
부족한 농지면적이 한계…농지전용 억제시 가격 더 내려가
영리적 동기로서의 농업경영 지속성 확보하는 게 최우선
장기적 식량 부족엔 식량 수급통제시스템 구축으로 대비
현 상황처럼 일시적 폭등엔 필수농산물 비축제도 구축부터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정리=이명철 기자] 식량 안보라고 하면 누구나가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과연 그게 적절한 걸까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식량 자급률을 높인다는 목표는 농정의 단골 메뉴였지만, 오히려 자급률이 지속적으로 더 낮아지는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2017년까지 곡물 자급률을 3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23.4%로 떨어졌고, 2017년에는 다시 2022년에 이를 32%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020년에 이미 자급률은 20.2%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농지면적이 330㎡(100평)도 채 안된다.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제일 작다. 이 작은 땅에서 쌀은 물론 소비자가 원하는 각종 채소, 과일, 축산물 등을 생산하면서 곡물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 결과가 현실의 자급률 하락임을 인정해야 한다.
비용에 상관없이 자급률을 높이려고 하면 조금 높아지겠지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자급률을 말하기 전에 곡물 자급률을 1%포인트 높이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그러면 식량 안보가 얼마나 더 튼튼해질 지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
식량 자급률 제고에 이어 나오는 주문은 농지 전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나라는 농지자원이 어느 나라보다 부족하므로 농지를 아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매년 6만ha(1ha=1만㎡)가 넘는 농지가 휴경되고 결국 폐경에 이르는 농지도 매년 6000ha가 넘는다. 최근 10여년 새 곡물, 과일, 채소 실질가격은 상승하는 데도 휴경지와 폐경지는 늘어나고 거의 모든 작물의 재배면적은 줄고 있으므로 결국 국내산 고추와 마늘을 시장에서 구입하기 힘들어질 지도 모른다.
전용을 억제해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가격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재배면적이 늘어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영리적 동기로 농업 경영이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필요한 농산물의 상당 부분은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해외 공급이 부족한 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 대응을 말하지만 어떤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 가지 상황은 기후변화와 저탄소 농업 등으로 세계적으로 생산이 부족해 해외 조달이 어렵고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우다. 또 다른 상황은 단기적 공급 부족 혹은 물류 이상으로 일시적으로 곡물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경우이다.
장기적 부족 상황에 대응하려면 앞서 지적했듯, 우리나라는 농지자원이 절대 부족하므로 식량 수급을 전체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축산물 소비와 생산을 줄이는 등 방법으로 사료 수요를 줄이고 토지 이용과 농산물 소비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체계를 수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최근 가격 급등으로 식량 안보에 관한 관심이 높지만 실질가격으로 보면 2008년과 2014년 폭등 수준을 넘지 않고 1970년대 수준보다는 훨씬 낮다. 국제 재고량도 당시보다 풍부해 국제곡물시장의 속성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파동의 하나일 수도 있다. 앞으로 국제 곡물 수급은 세계적 바이오연료 수요, 중국 등 거대 개도국의 축산물 등 식품 수요 증가,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 등 단수 증가 기술, 기후변화와 저탄소 농업 등 공급 요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달라질 것이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지금 당장 통제 위주의 대책을 추진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도 어렵다. 또 그런 상황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보다는 일시적 공급 부족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므로 그런 추세를 주시하며 단계적으로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위기 대응은 흉작, 국제 분쟁, 물류라인의 장애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수 농산물 비축제도를 식량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구축해야 한다.
국내 비축과 더불어 공급 부족시 즉시 도입할 수 있는 곡물을 해외에 비축하는 것이 보완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 곡물 유통사업을 하면 산지 및 수출 엘리베이터, 산지로부터 수출항까지의 운반선이나 철도, 수출항으로부터 국내 항까지의 선박 등에 항상 상당한 재고가 있으므로 이것이 곧 해외 비축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300만t 이상의 곡물을 상시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입선 다변화, 유사시 다른 나라와 식량을 서로 교환하는 스와핑 시스템 등 보완적 수단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