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삼성 등 아시아 의존도 줄이겠다"…유럽에 110조원 투자
by방성훈 기자
2022.03.16 09:25:00
인텔, 10년간 유럽에 800억유로 투자계획 발표
독일에 반도체 공장 건설…프랑스엔 R&D 허브 구축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에도 다양한 시설
높은 한국·대만 의존도 우려·EU 보조금 지원 등 영향
인텔 CEO "일자리 창출·유럽 칩 점유율 확대 등 기대"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인텔이 유럽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800억유로, 한국 돈으로 약 1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독일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프랑스엔 연구·개발(R&D) 및 디자인 허브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에서도 R&D, 제조 및 파운드리 서비스에 투자할 방침이다.
15일(현지시간) CNBC,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인텔은 이날 EU 내 반도체 제조 촉진을 위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초기 투자는 330억유로(약 45조 2000억원) 규모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약 5500개의 정규직을 포함해 건설·공급업체 및 파트너사 등에서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인텔은 우선 독일 북동부 도시 마그데부르크에 170억유로(약 23조원)를 투자해 2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 공장 건설을 시작해 2027년부터 생산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공장에선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2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칩을 생산할 방침이다. 또 공장 설립을 위해 약 7000명의 건설 노동자가 고용되고, 신설 후엔 3000여명의 정규직 직원이 이곳에서 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은 프랑스 파리 인근 지역에 R&D 센터를 건설하고 고성능컴퓨팅(HPC)과 인공지능(AI) 디자인 능력 향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프랑스에는 파운드리 디자인센터도 설립된다. 약 1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이탈리아에는 45억유로(약 6조 2000억원)를 투자해 약 1500명이 일할 수 있는 포장·조립시설을 짓기로 했다. 현재 이를 위한 협상을 이탈리아 당국과 진행하고 있다고 인텔은 설명했다.
아일랜드에는 120억유로(약 16조 4000억원)를 투자해 기존 생산시설을 확장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외에도 폴란드에 실험시설을 확충하고,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 센터와 공동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적으로 더 조화롭고 탄력 있는 공급 체인이 필요하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하며 “인텔의 유럽 투자는 스페인에서 폴란드까지 EU 전체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필수적인 디지털 기술을 작동시키는 두뇌”라며 “이 광범위한 투자 계획은 유럽의 R&D 혁신을 촉진하고 이 지역에 첨단 제조(산업)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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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인텔이 아시아 생산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목표하에 차기 대규모 칩 생산 지역으로 유럽을 선택한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 등 수많은 기업들의 반도체 공급망을 마비시킨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럽을 아시아 대체 지역으로 선택하게 된 데에는 EU의 보조금 지원이 중요한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EU는 지난달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EU 반도체칩법(European Chips Act)을 제정하고, 그 일환으로 반도체 업계에 430억유로(약 59조원)의 공공 및 민간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EU는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칩 시장에서 약 1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채택 후엔 2030년까지 20%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겔싱어 CEO는 “인텔의 투자 속도와 규모는 시설을 계획하고 있는 국가나 지역에 대한 EU 보조금에 매우 많이 의존하고 있다”며 “아시아에 공장을 세우는 비용과 일치하도록 공장 건설 비용에 대한 보조금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겔싱어 CEO는 지난 해 취임하며 전 세계 칩 생산에서 미국의 점유율을 당시 12%에서 향후 10년 동안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같은 해 악시오스의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도 “한국(삼성전자(005930))과 대만(TSMC)에 반도체 생산을 의존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외신들은 이번 인텔의 대규모 투자를 계기로 “아시아에 대항한 EU의 반도체 자립을 위한 생산확대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