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해룡 기자
2006.06.30 12:20:20
[이데일리 이해룡 칼럼니스트] ‘아무리 뽑아도 다시 고개를 드는 끈질긴 생명력’
질경이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생각이다. 주로 여름철에 우리나라 어디서나 시골에서 길가를 따라가다 보면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풀이다. 워낙 생명력이 강해서 질경이가 자리를 잡으면 주변의 화초가 엉망이 되는 통에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잡초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사람들에게 밉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질경이는 없애기도 쉽지 않다.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뽑아내기가 만만찮은 까닭이다.
한의학에서는 질경이를 차전초(車前草)라고 한다. 질경이를 차전초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소나 말이 끄는 수레가 지나간 바퀴자국에서 자란다고 하여 ‘수레 앞의 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풀이라면 하루도 못 돼 죽어버릴 만큼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질경이는 꿋꿋하게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으니 ‘잡초 중의 잡초’라고 할 만하다. 이 같은 질경이의 강인함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줄기가 없고 잎만 바깥으로 나와 있으니 수레바퀴에 밟히면 납작 엎드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적응력이 뛰어나다 보니 질경이는 경쟁관계에 있는 잡초를 밟아 없애주는 수레바퀴가 오히려 고마운 것이다.
미운털이 잔뜩 박혀있는 잡초이긴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환영받는 아주 유용한 약재다.
약재로 가장 널리 쓰이는 부분은 질경이의 씨인 차전자이다. 차전자는 몸안에 있는 나쁜 물질을 밖으로 잘 빼낸다. 그래서 몸이 붓는 부종이 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본초강목은 차전자를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져 능히 계곡을 건너 뛸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뇨작용이 우수하여 소변이 잘 나오게 한다. 소변량이 적거나 자주 소변을 볼 때 또는 소변을 아주 보지 못할 때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소변을 볼 때 통증이 있을 경우 차전자가 들어간 탕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개선된다.
넘쳐나는 수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설사에도 효과가 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구양수도 설사로 고생을 할 때 차전자의 덕을 톡톡히 본 일화가 있다. 사연인즉 구양수가 하루는 급한 설사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이 있었다. 워낙 거물인지라 황제가 구양수에게 어의까지 급히 내려보내 치료를 받게 했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약 한 첩을 구해 와서 구양수에게 먹였는데 먹자마자 신기하게 설사가 딱 멈췄다. 어의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낫게 한 약이 너무 신기한 나머지 구양수가 사람을 보내 이 처럼 신묘한 효과가 있는 약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니 차전자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도 탁효가 있다. 남성들의 정력이 떨어졌을 때 차전자가 들어간 오자연종환이 좋은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밤이 두려운 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재라고 하겠다. 이밖에 전립선질환으로 소변줄기가 가늘어졌을 때도 염증을 가라앉혀 증상을 완화시킨다.
질경이의 씨인 차전자 말고도 잎과 뿌리도 약재로 쓰인다. 동의보감은 코피를 자주 흘리거나 피를 토하고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올 때는 잎과 뿌리를 찧어서 즙을 내어 먹으면 좋다고 지적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차전자의 껍질인 차전자피도 각광을 받고 있다. 차전자피에는 섬유소가 많아서 다이어트 때면 으레 생기기 마련인 변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전자는 냉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소화기가 약한 사람들이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체질별로는 비위기능은 좋은 반면 신장 방광 등 비뇨생식기가 약한 소양인에게 많이 쓰인다.
한낱 잡초에 불과한 질경이가 한의학에서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 훌륭한 약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것도 되새겨볼 일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성적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우리 아이의 적성에 적합한 지를 찾아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예지당한의원 원장 ; 02-714-0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