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5.18 10:47:58
[조선일보 제공] 달콤한 육즙이 혀 안으로 들어왔다. 두툼하고 뽀얀 속살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하다. 향긋한 첫 맛 뒤에 남은 것은 육중한 고소함. 등딱지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한 꽃게 3 마리(1100g)가 허름한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수줍게 처분을 기다린다. 꽃게 찜(백숙) 중(中)자, 5만5000원. 대(大·1500g)자는 7만원. 가격마저 착하다.
서울 마장동의 ‘목포 산꽃게찜·탕’은, 꽃게는 먹고 싶고 지갑은 난도질 당한 ‘영세한 식도락가’를 위한 강력한 대안이다. 꽃게의 경우, 사실 고만고만한 놈들을 맛보기로 먹는 데야 큰 돈 들일 일 없지만, 튼실한 놈으로 포만감까지 느끼려면 ‘카드 할부’도 고민해야 할 만큼 가격이 부담스럽다.
청주와 소금을 넣고 15분 가량 쪄 낸 이 집의 ‘꽃게 찜’(꽃게백숙)은 그런 점에서 가격 대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한다. 중(中)자의 꽃게 세 마리는 아이 낀 세 식구 혹은, 성인 두 사람이 어지간히 포만감을 느낄만한 분량이다.
신사동의 이름난 유명 게 전문점의 꽃게 찜 가격은 6만원. 하지만 세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고, 게의 크기도 이 집보다 10% 이상 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참고로 11일 노량진수산시장의 최상품 암꽃게 1㎏의 경락 가격은 4만원이었다). 아쉬움은 깨를 너무 많이 뿌린 탓에, 꽃게 특유의 고소함과 깨의 고소함이 헷갈린다는 점. 깨를 싫어하는 식도락가들은 주문 전에 미리 빼달라고 주문할 것.
또 하나의 문제는 이미 이 집에 엄지 손가락을 드는 ‘꽃게 킬러’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오후 6시에 도착했더니 식당 밖 간이의자에 앉아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대략 밤 9시가 훨씬 넘어야 기다림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오후 2시~5시30분의 취약 시간대를 ‘공략’하지 않으면, 식당 밖에서 하릴없이 20~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이런 집의 특성상 예약은 받지 않고, 식당 안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꽃게백숙을 다 먹고 난 후, ‘간장게장’으로 마무리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 집의 메뉴는 백숙과 찜 뿐. 때문에 밥과 함께 먹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혹은 매콤한 것을 좋아하면 콩나물과 쭈꾸미로 버무린 ‘양념꽃게찜’도 괜찮다. 밤과 대추 등을 넣고 돌솥에 찐 ‘즉석 공기밥’은 2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 30분. 명절 당일과 그 전날만 쉰다. 5호선 마장역 2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저씨가 발레 파킹까지 해 준다. (02)2292-1270
글=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