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남·북 군사공동위로 미룬 민감 사안 5가지
by김관용 기자
2018.10.28 13:54:45
|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10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마친 남측 수석대표 김도균 소장(왼쪽)이 종결 발언에 앞서 북측 수석대표 안익산 육군 중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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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렸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남북 장성급 대표단간 만남입니다. 이번 회담은 우리측이 전통문을 통해 개최를 제의했고 북측이 이에 호응함에 따라 열리게 됐습니다. 이날 회담 출발 전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육군소장)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하지만 회담이 끝나고 언론에 제공된 ‘보도문’에는 “92년 5월 남북이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준용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기로 했다”고만 돼 있습니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관련 구체적 논의가 없었느냐는 취재진 질의에 김 소장은 “구체적으로 논의가 됐다”면서 “1992년 5월 군사공동위원회 관련 합의서가 양국간 합의한 내용으로, 그 합의서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작성이 돼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머지 조정사항에 대한 내용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확정하기로 협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9.19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논의할 주제를 크게 다섯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북측 선박의 해주직항로 이용 및 제주해협 통과 문제 △서해 평화수역 및 공동 어로구역 경계 설정 문제 등입니다. 폭발력이 큰 민감한 사안 대부분을 군사공동위원회로 넘겨놓은 모양새입니다.
우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를 협의한다는 대목에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미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우리 군의 전력증강과 훈련까지 북한이 시비를 걸 수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달 24일에도 우리 해군의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 진수와 해상초계기 도입 등 전력증강 계획을 거론하면서 이를 ‘반민족적 행위’라고 비난한바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2018 맥스썬더’를 이유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한미연합훈련 등 정례적 훈련이나 한국형 3축 체계 전력화를 북한과 협의해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또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와 북측 선박의 해주 직항로 및 제주해협 통과 문제도 현안입니다. 우선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무력화를 위한 합의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PSI는 미국과 참여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운반하는 의심스러운 비행기와 선박 등을 수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인 2009년 5월 PSI 회원국이 됐고 2010년부터 훈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PSI에 배치되는 합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해주 직항로는 서해를 오가는 북한 선박의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북한 선박이 해주에서 서해로 나가려면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장산곶 끝까지 올라갔다가 빠져 나가야 하지만, 직항로가 생기면 NLL을 가로질러 나갈 수 있습니다. 직선거리 20여km인 인천~해주 직항로가 신설돼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서해평화지대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북측에 대한 과도한 양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문제는 사실상 5.24 조치의 해제를 의미합니다. 제주해협은 2005년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북측 선박이 동해와 서해를 오가는 지름길입니다. 제주 남쪽 공해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한반도와 제주도 사이 뱃길인 제주해협 항로를 이용하면 약 53마일의 항해거리와 4시간 이상의 항해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남북해운 합의서 파기 조치로 북측 선박은 현재 기존대로 제주 남쪽 공해를 통해 동·서해를 왕래하고 있습니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 어로구역 설정 문제도 뜨거운 감자입니다. 9.19 남북군사합의서는 “평화수역 범위는 쌍방의 관할하에 있는 섬들의 지리적 위치, 선박들의 항해 밀도, 고정 항로 등을 고려해 설정하되 구체적인 경계선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확정하기로 했다”고 돼 있습니다. 또 “시범 공동어로 구역 범위는 남측 백령도와 북측 장산곶 사이에 설정하되 구체적인 경계선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확정하기로 했다”고 합의한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향후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꾸려지면 그 경계선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우리측은 서해 NLL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그들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NLL 이남의 경비계선을 고집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007년 정상회담 때도 서해 NLL에서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시도했지만, 입장차로 무산된바 있습니다. 당시 우리는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NLL을 중심으로 남북이 균등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북한은 NLL 이남 해역의 경비계선을 설정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김도균 소장이 “서해 NLL은 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가장 관심있게 논의해야 할 과제로 서로(남북)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건 여전히 NLL에 대한 인식차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