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문기환 기자
2007.10.24 10:56:41
[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며칠 전, 한 경제 관련 전문잡지의 편집장과 점심을 함께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의 전공(?) 분야이자 공통 관심사인 국내 언론 미디어의 변화 향방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방송 및 인터넷 매체, 지하철 공짜신문의 급속한 세력 확장으로 신문, 잡지 등 기존 인쇄매체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어느새 인가 퍼스널 컴퓨터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문화가 우리의 직장과 가정을 급속도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손에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컴퓨터 마우스가 마치 TV 리모컨처럼 익숙해져서 마지막 컴맹 세대라 불리던 전업주부나 노인들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용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사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인쇄매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 변화 조차 정확히 예측하지 못해 사전에 대비책을 못 세운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고 편집장은 고해하듯 말한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는 잡지를 만들 때, 사회의 발전 방향 즉, 변화하는 독자들과 함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문학, 사회학 등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이 기본이 되는 인본주의 분야 기사도 경제·경영 전문지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꺼내었다. “기업의 존립 목적은 이윤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비자(고객)들에게 좋은 상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매출 증가와 함께 이윤도 자연히 늘어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바로 지난 주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내가 가을 맞이 대청소 하는 것을 도와주다가 오랜만에 서재라고도 할 것 없는 조그마한 서가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꼭대기 귀퉁이에 꽂혀있던 어느 책에 손이 갔고, 먼지를 털어 내다가 어느새 한 쪽 두 쪽 읽어 보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필자가 대우그룹 신입사원 시절인 1985년 봄, 뉴욕에 있는 홍보대행사인 Hill & Knowlton 본사에 연수를 갔을 당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당시 세계최대의 홍보대행사였던 그 회사의 설립자인 John W. Hill이 저술한 이라는 책이었다.
솔직이 그 책을 선물 받은 기억만 어렴풋이 났지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사회 초년병이자 홍보 초심자인 당시 필자에겐 너무 어려워서 대충 몇 쪽 넘기다 말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22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필자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아마도 지난 20여 년 간 기업홍보의 실무를 담당해온 터이라 직업의식에서 라는 제목만 보고 무심코 집어 들었을 것이다.
먼저, 저자의 집필 동기나 배경, 사고 및 철학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서문을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과거에는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 경영자가 오직 이윤 추구에만 전념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현대 기업경영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기업경영의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경영자들은 어깨 너머의 일들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여론이다.”
(* Hill의 생각을 보다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소개한다.)
이 책은 1957년에 저술된 것이다. 반세기전에 미국의 한 홍보전문가가 사회의 여론, 다시 말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한 대목을 주시하고자 한다. 당시 미국의 기업들은 창립 50년, 100년의 역사를 넘어 영속기업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벌써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내에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善(목적)이 이윤 추구인양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오직 재무제표 상의 순이익으로 설명하려는 기업들이 일부 있어 실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오랜 언론사 기자 생활을 경험한 후 홍보 전문 대행사를 설립한 Hill은 50년 전 기업의 CEO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지금의 기업 관계자들도 한번쯤 반추해 볼 만한 구절이라 생각된다.
“홍보란 善意(good will)라는 가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홍보의 업무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만은 아니다. 홍보는 기업정책의 심장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