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의 IT세상읽기]솥뚜껑 보고 놀란 'https차단' 논란

by김현아 기자
2019.02.16 17:44:00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지난 12일 정부가 불법음란물과 불법도박 같은 내용을 몰래 유통하던 해외 인터넷사이트를 잡겠다며 접속차단 기술을 고도화했다고 발표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감청 아니냐”, “왜 국가가 맘대로 인터넷을 차단하느냐”, “중국처럼 되는 거냐”, “야동 안 보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야동 합법 청원)” 같은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부는 비판 여론에도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은 이번 조치로 세상을 병들게 하는 불법 정보에 대한 효과적인 차단이 이뤄져 이용자 피해를 줄일 것이라며 오해를 풀기 위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불법 음란물 https차단에 항의하는 시민
정부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이번에 도입한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 접속차단 방식’은 통신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패킷 감청이 아니고, 어떤 사이트를 차단할까 정하는 기준도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SNI 필드 차단 방식은 https에서 암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환경 설정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서버 이름을 식별해 차단하는 기술이어서 패킷 내용을 들여다보는 감청과 다르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청 기술을 적용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업그레이드된 기술로 어떤 사이트를 차단할지 여부는 정보통신망법(44조의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에 따라 음란물, 명예훼손, 불법도박 정보, 국가보안법 금지정보 등에 대해 심의권한을 부여받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 소위 위원 5명이 결정한다. 지금까지 했던 방식이다.

그런데 왜 민심은 분노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인터넷 내용심의 제도에 대한 불신,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국가주의 경향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때 방송위원회 심의 기능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 업무가 통합돼 탄생했다. 여야 추천 상임위원 9명이 있는 법정 기구다.
좌파·우파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부는 ‘관-적어도 반관반민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조직-에서 세상에 악이 되는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인터넷 내용 심의를 맡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불법정보로 판단하고 접속차단을 결정했다가 실수한 예는 적지 않다.

성기노출 등 어디까지를 불법 음란물로 볼 것인지도 논란이나, 외국인 기자가 운영하며 북한의 정보통신기술 현황을 전달하는 ‘노스코리아테크’를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차단했다가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고, 웹툰 레진코믹스를 음란 사이트로 차단했다가 이용자들의 항의로 하루 만에 번복한 해프닝도 있었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은 심의제도로 불법으로 판단한 인터넷 사이트를 더 고도화된 기술로 막는다고 하니, 국민으로선 완벽한 신뢰를 보내기 어려운 것이다.

소위 ‘가짜뉴스’ 파동에서 드러난 정치 편향성도 인터넷 내용규제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이를테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순실 태블릿PC 보도(jtbc)는 문제 없다’고 판단했는데, 야당은 여전히 ‘가짜뉴스’라고 주장한다. ‘5.18은 폭동이고 1급 전쟁 범죄다’ 등의 영상 삭제 요청에 대해 구글 유튜브가 거부하자 정부 여당은 강도 높은 비판을, 야당은 제작자의 이의제기제도를 언급한다.

정치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입장차가 크다 보니, 인터넷에서 뭔가를 차단하거나 삭제하고 허용하고 푸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감청기술이 아닌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인데, https 차단이 논란인 이유는 자라(인터넷 국가주의)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셈이다.

정부가 합법적인 국가권력을 공익을 위해 행사하려 한다는 점을 인정받으려면 인터넷 내용 심의 제도를 자율규제 중심인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