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윤진섭 기자
2011.02.28 09:59:37
말레이 정부, 韓금융권 링깃채권 한도요청 속속 `거절`
기독교계 반발속 수쿠크 논란 `불편한 심리` 반영한듯
재정부 `상황 예의주시`..외화자금조달 비용증가 우려
[이데일리 윤진섭 김유정 기자] 이슬람채권법이 `좌초` 위기에 몰린 가운데 최근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국가들이 국내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요청에 대해 사실상 거절 수준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파악돼, 파문이 예상된다.
이는 이슬람채권에 대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슬람 국가들이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한 불편한 심리를 반영해 국내 금융권에 보복성 조치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계 금융기관들의 말레이 링깃(Ringgit) MTN(Medium Term Note) 프로그램 추가 승인이 어렵다는 뜻을 밝히고, 실제 신규 설정 승인을 무산시켰다.
MTN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채권의 일종으로 중기채권에 속하는 것이다. 채권의 한도와 기간을 사전에 설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수시로 어음을 발행할 수 있으며 차입자가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선택도 가능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최근 현대캐피탈은 2008년 말레이 채권시장에 설정한 20억 링깃 규모의 MTN(Medium Term Note) 프로그램의 한도가 모두 소진됐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정부에 추가 설정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슬람채권(수쿠크)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권장하기 위해 링깃표시채권 신규 승인을 내줄 수 없다`는 점을 거절 이유로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슬람채권 관련법은 국내 기독교계의 반발로 사실상 좌초 위기에 몰려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말레이시아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슬람채권 관련법을 통과시켜 수쿠크 채권을 발행해 자금 조달은 허용하겠지만, 다른 방식의 외화 자금조달은 불허할 것`이란 의지를 엿 볼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사실상 국내 금융권의 말레이시아 시장 내 자금 조달이 원천봉쇄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치인 셈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의 보증이 가능한 국책은행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추가 MTN 설정을 승인해줬지만, 이 역시도 수쿠크 조건을 달아 발행 한도가 축소됐다.
최근 산업은행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35억 링깃 MTN을 신규로 설정했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중 절반 이상을 이슬람채권으로 발행하는 것을 전제로 승인했다. 링깃본드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지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링깃 MTN 추가 한도 설정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국내 은행들의 링깃 본드 발행도 주춤해지는 양상이다.
하나은행은 2009년 10억링깃 규모의 MTN을 설정하고 한꺼번에 한도를 소진해 현재 추가 발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의 분위기들을 고려해 추가 발행 승인 신청을 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발행 한도가 남아 있는 우리은행, 농협, 기업은행(024110)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한도를 소진하면 추가 MTN 설정을 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시장 상황에 맞춰 최적기에 한도를 쓰겠다는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국내 금융권의 투자 요청에 대한 비우호적으로 바뀐 데는 국내의 수쿠크 논란과 무관치 않다.
실제 최근 방한한 마하티르 반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슬람채권(수쿠크) 비과세 법안 처리 논란과 관련해 "이슬람인들의 금융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서 잘못 유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며"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슬람채권(수쿠크)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동남아권의 대표적 자금 조달 방식인 말레이시아 링깃채권 창구가 막히는 양상"이라며 "국내에서 이슬람채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국내 금융권이 동남아 자금조달시장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슬람채권에 대한 국내 논란 확산에 반비례해 동남아시아 중앙은행들이 국내 투자 축소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기관들이 발행한 달러 채권에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을 비롯한 이슬람권 동남아시아 중앙은행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슬람권 채권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도 바뀔 조짐이 있어,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재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이슬람권 국가들이 우리나라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역차별을 하고 있다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이슬람채권 문제가 경제적 이슈가 아닌 정치, 종교 문제로 불거졌다는 점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동남아 국가들이 노골적으로 국내 기관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겠지만, 불편한 심기를 자금조달 시장에 다각도로 반영시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이슬람채권 논란이 자칫 자금조달 다변화를 막아, 결과적으로 외화조달 비용을 비싸지게 하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