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가시화된 금통위원 면면의 성향

by최한나 기자
2008.06.25 10:21:56

새 금통위원 3명중 2명이 5월 금리인하 주장
6월 만장일치 동결 이뤘으나 인상까진 `험난`

[이데일리 최한나기자]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한국은행 내부의 평가다. 새로 합류한 3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2명이 미리 준비한 듯이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던 것. 자칫하면 3대 3으로 인하와 동결이 엇갈려, 이성태 총재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행사하는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한달전 금통위에서 경기 둔화 가능성을 부각시키며 통화정책 완화 시그널을 보내놓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금리인하 기대가 높아져 있던 상태였다. 정부에서 경기부양 수단으로 금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직·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해왔던 시기이기도 했다.

4월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주장했던 박봉흠 위원이 특유의 유연성을 발휘, 3대 3으로 부딪치는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25일 공개된 5월 금통위 의사록은 뚜렷하게 '완화된' 위원회 세력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리인하를 기대하던 시장 분위기가 긴축을 우려하는 쪽으로 180도 돌변했는데도, 6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이성태 총재가 '금리인상 얘기를 꺼낼 때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만하다.



 

▲ 박봉흠 금통위원
박봉흠 위원은 지난 4월과 5월 금리 결정을 통해 `정부출신 꼬리표를 뗀 중립적 인사`라는 인상을 보여줬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박 위원은 "물가가 예상을 초과해 큰 폭으로 상승한 데다 물가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의사록을 토대로 추정)며 동결에 표를 던졌다. 지난 4월,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금리인하를 주장했다가 4월 소비자물가가 4%를 넘어서는 등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자 한달만에 의견을 바꾼 것이다.

5월 이후 물가가 한층 더 속도를 내며 올라가고 있는 등 물가 상승세가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갈 경우, 앞으로 박 위원은 오히려 인상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내부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물가나 유동성 사정에 따라 인상과 인하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의견을 제시하는 성향이라는 분석이다.

박 위원은 작년 7월과 8월,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렸을 때에도 특별히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박 위원은 빠르게 풀리는 유동성이 부동산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한은 내부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해 두달 연속 금리인상에 찬성했다.

이는 `대표적 비둘기파`로 꼽혔던 강문수 위원이 금리를 올리면 서브프라임 사태로 위축된 금융을 더욱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며 당시 반대의견을 냈던 것과 명백히 대비된다.

한은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만 해도 물가가 이렇게 빠르게 올라올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에 더 중점을 둘 수 있었지만, 그 이후 계속 보면서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원래 봤던 게 아니라고 생각되니 인하해야 한다는 생각을 금방 거둬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에 오랫동안 있었다고 반드시 친(親) 정부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는 없다"며 "(박 위원의 경우) 금통위원을 하신 지 이미 2년이 넘지 않았나"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 위원이 4월에 이어 5월까지 금리 인하를 고수했으면 총재가 나서야 했었을 것"이라며 "(박 위원이) 마음을 돌려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강명헌 금통위원

내정됐을 때부터 "정부 쪽 의견을 강하게 반영할 것"이라는 평을 받아왔던 강명헌(기획재정부 장관 추천), 최도성(금융위원장 추천) 위원은 지난달 금통위에서 예상에 철저히 부합하는 액션을 보여줬다.
 
당시 취임한 지 약 보름밖에 되지 않았던 두 위원은 "국내 경기가 하강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물가는 하반기 이후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의사록)"며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통위에서도 두 위원은 물가보다는 성장 쪽에 확실히 관심을 두어 의견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처음 참석한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고 나선 것부터가 두 위원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록에 따르면, 두 위원 모두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는데, 강명헌 위원의 경우는 미국과의 정책금리차가 과도하다는 점도 강하게 부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 최도성 금통위원

하지만 대내외 물가여건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이번달 금통위에서는 두 위원 모두 일단 `동결`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계속해서 데이터를 지켜봐 온 분들은 물가 올라가는게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을 테지만, 새로 들어온 분들은 한달 데이터만 집중적으로 봤기 때문에 5월회의 당시까지만 해도 인플레 위험을 상대적으로 덜 느꼈을 것"이라며 "지금은 물가 상승이 심각하다는데 다들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이 금리인하를 주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상` 분위기를 제어하는 역할 정도는 계속 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중론이다. 첫 금통위에서부터 인하를 주장하고 나설 만큼 성장을 위한 금리정책에 망설임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다른 관계자는 "내심 경기위축이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물가가 이렇게 치솟고 있는 상황에 금리를 내리자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금리정책 방향이) 인상 쪽으로 돌아섰는데 두 명이 인상 반대 쪽에 있으면 실제로 인상이 결정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 김대식 금통위원


강명헌 최도성 위원과 함께 지난 4월말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대식 위원(한국은행 총재 추천)은 5월과 6월 회의에서 모두 동결에 손을 들었다.
 
그러나 5월의 경우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 아니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던 것으로 알려져 비둘기파적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통위원 내정 당시 `내외금리차가 벌어지면 외국자본 유입에 가속도가 붙을 경우 환율이 하락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칼럼을 쓴 사실이 알려져 정부의 금리인하 논리에 동조하는 인사가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 특유의 화법이 그러할 뿐 비둘기파로 분류하기에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금통위에서 김 위원은 성장이나 물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은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로 합류한 다른 위원들이 금융시장내 강하게 자리잡은 금리인하 기대에 부응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반면, 김 위원은 대내외 금리차나 시장내 형성된 인하기대보다는 경제지표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김 위원은 지난 4월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선제적인 정책은 미래에 대해 어떻게 포지션을 가질 것이냐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시장에 반응하는 통화정책은 선제적인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은 한 관계자는 "김 위원의 경우 전공이 통화정책 분야인데다 한국은행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 다른 새 위원들보다 금융이나 통화에 대한 이해가 빠른 편"이라며 "통화정책 효과도 좀 더 다각적으로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5월까지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두달 연속 나왔다. 특히 5월의 경우 금리동결에 표를 던지면서도 `앞으로는 인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거나 `물가가 예상보다 크게 오른 만큼 일단 인하를 유보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개진되는 등 동결표를 던진 위원들조차도 경기부양적 금리정책에 기운 분위기가 강했다.

금통위가 `금리인상`쪽으로 빠르게 선회할 것으로 예상하기 힘든 대목이다.
 
한은 한 관계자는 "물가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점, 다른 나라가 긴축적 움직임을 보이는 여건 등을 감안하면, 향후 '금리인상'이 소수의견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상이나 인하 결정이 나려면 총재를 제외하고 최소한 4대 2의 비율이 돼야 하는데 현 금통위 구도상 한 방향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달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이 얼마동안 이어지겠지만 경제내 흡수되면 어느 정도 정상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유동성 증가가 빠르기는 하지만 우리 경제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등의 발언을 내놓으며, 물가나 유동성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