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읽어주는 남자]동성애자를 동성애자라고 불러도 처벌받는다?

by전재욱 기자
2015.07.19 12:42:59

동성결혼식에 '똥'뿌리는 사회…동성애자 호칭은 형사처벌 가능
쉬쉬하는 분위기 노린 범죄도…"동성애 알리겠다" 협박
헌법 '혼인은 양성 평등"..'동성결혼은 위헌' 해석
'동성결혼 안돼' 명확히 정한 법은 없어.."법 해석의 문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미 동성애 코드를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50대 남성 이모씨는 2013년 9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를 찾아가 미리 준비해간 ‘인분’을 뿌렸습니다. 이 곳에서는 김조광수씨와 김승환씨의 동성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씨는 오물을 살포한(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도 당당했습니다. “신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동성애자의 결혼을 막고자 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이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씨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김씨 부부는 아직 법적으로 남입니다. 두 사람 모두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울서부지법에서는 “법률상 부부로 인정하라”며 두 사람이 낸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 6일에는 첫 심리가 열렸습니다. 마침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한 터여서 소송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지 법원 판결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다른 사람을 ‘동성애자’라고 부르는 게 죄가 될까요? 허위인 경우는 물론, 사실을 말했다고 해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황모씨는 2013년 11월 인터넷에서 동성애자인 이모(29)씨를 동성애자라고 언급해 명예훼손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민사상 책임도 따릅니다.

강모(39·여)씨도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8차례에 걸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항문성교의 쾌락’ 등의 표현이 담긴 글을 올리고 이씨의 실명을 언급하고 사진을 게재했다가 위자료로 500만원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한 법관의 말을 빌리면 전과자를 전과자라고 부른 것처럼 숨겨왔던 사실을 들춰낸 데 따른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홍길동이 호부(呼父)와 호형(呼兄)을 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일종의 금기어인 셈입니다.

동성애자라는 점을 들추면 왜 안 될까요. A군의 사례는 우리사회의 동성애자들이 좀처럼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A군은 목소리가 곱고, 눈썹을 그리고 등교하는 등 평소 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급우들은 A군을 욕하고 놀렸지만, 유독 B군은 A군에게 잘해줬습니다. A군은 이런 B군에게 크게 의지했고, 나중에는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B군은 그날 이후 A군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A군은 혼자가 됐습니다. 매몰찬 따돌림이 뒤따랐죠. 결국, A군은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법원은 “남녀공학으로 전학가라”는 정도의 조치밖에 취하지 않은 학교에 배상 책임을 물어 유족들에게 1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제 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춰야 하는지 짐작이 가는지요.



‘낙인’이 찍히는 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쉬쉬한 것인데, 이러한 심리는 범죄를 부르기도 합니다. 신모씨는 헤어지자는 동성 애인에게 “동성애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유사성행위를 강요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만남이 암암리에 이뤄지는 점을 노리는 범죄도 발생합니다. 레즈비언 C씨는 작년 3월 스마트폰 채팅 앱에서 사귄 동성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약속장소에서 C씨를 기다린 사람은 남성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레즈비언 행세로 만남을 유도해 C씨를 강간하려다가 붙잡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에 처해졌습니다.

이렇긴 해도 ‘동성결혼은 안된다’고 명확히 정해둔 현행법은 없습니다. “민법에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한 조항은 없다”는 김조광수씨 부부의 주장은 법적으로 맞습니다. 다만, 굳이 금지할 필요가 없어 그런 규정이 없었다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지금까지는 결혼이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민법에 쓰이는 ‘부부’라는 법률용어가 남편(남성)과 부인(여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이죠. 서대문구청은 부부는 남여의 결합을 뜻한다는 법률용어를 근거로 김씨 부부의 혼인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법조인들은 우리 헌법이 동성결혼을 불허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돼 있습니다.

최진녕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헌법은 혼인을 남녀(양성) 간 결합으로 보고 있다.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동성결혼은 어려울 것이다.”

반면 헌법으로 동성결혼을 막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현곤 법무법인 지우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헌법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법 해석을 통해 동성결혼을 허락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