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이 다시뛴다)⑨움츠렸던 `IB의 꿈` 기지개

by장순원 기자
2009.09.24 10:36:00

<이데일리TV 개국 2주년 기획>
브로커리지 한계..고부가가치 IB 더 키워야
인력보강·조직개편 첫걸음..해외진출도 모색
대형화와 전문화 시급..자기자본 확충 `필수`

[이데일리 장순원기자] `한국판 골드만삭스`

자본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자본시장법을 도입하면서 모토처럼 내세운 말이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키워야 한다는 바람과 의지를 담았다.

하지만 이말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지난해 미국계 대형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쓰러지면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IB가 지목된 탓이다. 국내 증권업계의 IB를 향한 꿈은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바로 유탄을 맞았고, 결국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올들어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다시 미래의 먹거리로 IB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첫걸음을 내딛었지만 앞으로 갈길은 멀다.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



1년전 미국계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결국 한국형 IB논의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듯 했다. 이곳저곳에서 규제강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자본시장법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거셌다. 

증권사들도 한껏 몸을 낮췄다. 부채비율을 낮추고 고위험투자를 자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 출처 : 금융투자협회

하지만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 등에 치우친 구멍가게식 영업행태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지난 3월말 현재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비중을 살펴보면 여전히 큰 힘 안들이고 돈 벌 수 있는 브로커리지 비중이 절대적으로, 후진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수익원 다변화 측면에서 뿐 아니라 금융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면 IB가 필수적이란 목소리가 재차 힘을 얻고 있다.

김범구 삼성증권 기관영업지원파트 부장은 "사업구조 다양화와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IB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도 "지난 금융위기는 유동성의 위기이자 레버리지가 과도했던 일부 미국식 모델의 위기였을 뿐 IB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금융시스템이나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자본시장이 더 성장해야한다"며 "그런의미에서 기업과 투자자를 잇는 IB부문을 육성하는 것은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시행을 계기로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투자은행(IB) 부문을 키우겠다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시작은 인력을 끌어들이고 조직을 개편하는 일이었다.

마침 주변환경도 증권사에게 유리했다. 금융위기 탓에 몸값이 낮아진 우수 인력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 한국의 `골드만삭스`는 누구?
한국투자증권은 올 3월 글로벌 IB 부분의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임춘수 전무 등 글로벌 영업전문가와 글로벌증권사 출신의 애널리스트들을 대거 영입했다. 해외 투자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직개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우증권은 전통 IB기능을 강화하고, 본원적인 발행시장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커버리지본부는 각 산업팀별로 담당 업종을 세분화하여 전문성을 강화했고, 자본시장본부(Capital Market)본부는 신디케이트팀을 신설했다. 대규모의 거래 성사를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내부를 정비한 증권사들은 해외로도 서서히 눈을 돌리고 있다. 삼성증권은 국제 IB의 중심지인 홍콩에 거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각 사업부문 책임자에 홍콩 현지 출신 우수인력을 대거 영입, 홍콩 IB사업을 조기에 정착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또 홍콩을 발판으로 중국과 싱가폴, 대만, 인도 등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거점을 확대해간다는 구상이다.

김범구 부장은 "서구식 모델보다는, 리테일 고객 및 기존 기업고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한국형 IB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며 "특히 기존 자산관리 인프라에 상품공급처로서 IB 기능을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IB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신보성 실장은 "이제 걸음마 단계며, 첫걸음을 내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증권사들의 대형화나 전문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IB업무의 특성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자기자본투자와 인수 등 고수익·고위험 투자를 위해서는 내부유보, 증자 등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이 필수적이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주주의 증자 뿐 아니라 M&A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문화 성장전략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프라도 지금보다 훨씬 보강해야 한다. IB업무를 위해서는 트레이딩인프라, 리서치능력, 해외네트워크 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탁매매 등에 의존했던 국내증권사들은 이같은 인프라가 전무한 수준이었다.

신 실장은 "외국에서 전문가 한 두명 데리고 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단기간에 갖춰질 수 없으며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금융인프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이머징마켓, 선진 투자은행들의 미개척지 등을 선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언 연구위원은 "투자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위험관리 능력과 장기비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안정적인 성장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걸음마 단계인 IB를 키우려면 규제의 유연성이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관련 딜이나 공기업 민영화 딜 등에서 외국계 주관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며 "정책적 배려를 통해 국내사들에게 수임 기회를 늘려줘야 국제적 경쟁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