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춘동 기자
2009.02.16 11:10:00
최근 수년간 벤처캐피털의 장외기업 투자수단 유행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 많아 `노예계약`
[이데일리 김춘동 안재만기자]
코스닥 상장법인인 H사는 최근 L사를 비롯한 벤처캐피털 3곳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자회사인 M사가 지난 2006년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 때문이다. L벤처캐피털 등 3사는 지난 2006년 비상장 휴대폰 부품회사인 M사에 상환전환우선주 형태로 모두 40억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공동투자 명목으로 코스닥 상장법인이었던 H사를 끌어들였다. H사가 일부 금액을 함께 투자하면서 M사의 경영관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H사는 이 제안을 수락했고, 10억원을 투자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하지만 M사의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기업공개는 커녕 최근 경기침체와 맞물려 사실상 폐업상태로 내몰렸다. 그러자 L벤처캐피털 등은 M사에 투자원금과 함께 이자 상환을 요구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사실상 폐업상태인 M사가 투자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되자 L벤처캐피털 등은 H사에 상환을 요구했다. 투자 당시 H사와 H사의 대표이사가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H사는 당시 지급보증을 서긴 했지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투자계약이 이뤄졌다며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2~3년간 장외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인기를 끌었던 상환전환우선주의 부작용이 표면화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해당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옵션계약을 지키지 못해 투자금을 고스란히 토해내거나 벤처캐피털과의 소송으로 치닫는 일도 생기고 있다.
특히 상환전환우선주 발행계약이 거의 노예계약 수준으로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우가 많아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요구되고 있다.
상환전환우선주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말한다. 이익이나 이자의 배당과 잔여재산 분배에 있어 보통주에 비해 우선권을 가진다. 최근 수년간 벤처캐피털이나 일부 증권사들은 장외기업에 투자할 때 상환전환우선주를 애용해왔다.
기술력은 있지만 미래가치가 불투명한 기업에 대해 일단 우선주 형태로 투자한 뒤 향후 기업공개를 비롯해 약속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더 높은 가격에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부채이면서도 재무제표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표시돼 기업 입장에선 부채비율 개선의 효과도 있다.
문제는 상당수 상환전환우선주 발행계약에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벤처캐피털들이 투자과정에서 불법적이거나 편법적인 이면계약 등을 통해 다양한 옵션을 부가해 투자금 회수를 위한 안전장치를 이중삼중으로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H사의 경우 일정기간 내 기업공개를 비롯한 특정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주식을 되사주는 것은 물론 투자원금의 이자와 연체이자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 L벤처캐피털 등은 이 과정에서 M사에 투자하면서 H사와 그 대표이사에게 연대보증까지 받아냈다.
통상적으로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주와 같은 의결권을 요구하거나 향후 실적이 예상에 못미치거나 공모가가 우선주 가격을 밑돌 경우 보통주 전환비율을 조정하는 옵션 등도 일반적이다.
벤처캐피털은 대출형태로 이자수익을 확보하면서 투자이익까지 노릴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히 보증과 담보 등의 안전장치까지 마련해둘 경우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의 경우 대출 자체가 금지돼 있어 기술과 사업성 평가를 통해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상환전환우선주 투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 같은 투자원칙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옵션계약으로 담보와 보증에 의존해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채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장 자금이 급한 기업의 경우 불합리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옵션계약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이자와 함께 고스란히 돌려줘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상환전환우선주 발행조건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독소조항이 많아 거의 노예계약과 흡사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