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명수 기자
2001.04.06 13:29:48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JP모건의 임지원 박사입니다.(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뜻하지 않게 국가부채 논쟁에 휩쓸린 보고서 한 편
-임 박사님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요. 지난해 총선때 국가부채 논쟁에서 한나라당 정책위장을 맡고 있는 이한구 의원이 인용한 자료가 바로 임 박사님의 리포트였는데요. 그 일로 곤욕도 좀 치르셨다면서요.
▲(대단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좀 받았습니다. 인용된 부분은 구조조정에 관한 보고서였습니다. 모건이 99년 2월부터 태국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구조조정 관련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내기 시작했어요. 근데 채무에 관한 자료가 없어서 자료찾는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만 해도 대외채무와 국내채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있었지만 이 둘을 총괄하는 부서는 없었기 때문에 환율방향도 예측하기 어려웠어요.
사실 그 보고서는 힘들게 자료를 찾아서 제 나름대로는 굉장히 심사숙고한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와있는 통계자료를 보고 채권발행(bond issuance)도 점검했죠. 국가채무와 국채, 공채, 채권발행, 정부 차용금(government borrowing) 등을 맞춰서 자신있게 쓴 건데 그렇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전화도 많이 받았고 심지어 사과하라는 압력까지 들어왔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고 강경하게 대처해줬어요.
외환위기를 겪고나서 정부 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료요청 문제로 정부와 대화할 일이 많은데 점점 개방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느껴요.
-임 박사님의 리포트를 보내달라는 요청도 있나요.
▲네. 메일링 리스트에 넣어달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저희와 같은 외국계 쪽의 보고서들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모니터링 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외국인 투자동향을 파악할 목적으로 외국계 보고서를 필요로 하는 분이 많아진 탓이겠죠. ‘이 사람들의 견해는 무엇인가’ 이런 의미에서요.
”경기전망을 할 때 택시기사, 호텔도어맨들의 생각도 참조합니다”
-자료들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공식적으로 나오는 자료는 기본적으로 다 체크합니다. 저는 글로벌리서치에 있기 때문에 타국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을 볼 수가 있어요. 비록 그것이 공식화된 것은 아니더라도 제 업무에는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신문도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쓰는 지표들 중 하나는 특히 경기가 나빠질 때는 더욱 택시운전사나 호텔도어맨들의 의견이에요. 아주 유용하죠.
-하지만 그런 건 계량화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계량화는 안되지만 방향 설정은 가능합니다. 데이터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아닌가를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 손님 많이 드나요? 옛날보다 손님태우기 위해서 많이 기다리세요?” 하고 물어봐요. 기회가 있을때마다요. 그분들은 늘 라디오를 틀고 있고 승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눠서 그런지 의외로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어요. 호텔도어맨들에게도 택시를 기다리며 “요즘 손님들 어때요?” 하고 물어보죠.
국내 요인만 보면 2분기 경기회복 가능
-그런 데이터에 의존한 결과 현재 국내경기가 어떻다고 보세요.(웃음)
▲국내 요인만 보면 확실히 경기가 반등기미(buttoming out) 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요인만 빼면 2분기 회복도 가능한 것 같구요. 하지만 해외요인을 절대 무시할 수 없잖아요. 해외요인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는 건 사실인데 미국이 리세션(경기후퇴)를 피하고 최악의 상황만 지나준다면 국내 경기는 W자 반등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의 보고서를 보면 내수부분에서는 분명히 바닥인데 외부적인 리스크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저희는 2분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비심리는 살아나고 있는 게 확실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1분기와는 달리 2분기 전망이 무척 안좋게 나오는 상황이거든요.
요즘 V, U, W자 반등에 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V든 U든 다 좋지만 중요한 건 어떤 근거로 해서 그러한 모양의 반등이 일어나게 되느냐는 거죠. 보통 미국경기를 얘기할때는 ‘전분기 대비 연율’을 많이 봐요. ‘SAAR’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년동기 대비 연율’을 해서 지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 문제에요. 전년동기 대비로 보면 V나 U자 반등은 말도 안되고 잘해봐야 W반등 이거든요. 어떤 시리즈를 대비해서 하는 것이냐는 것에 관해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전망을 하실 때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참고하십니까.
▲숫자는 기본이고요. 숫자가 매우 중요하긴 한데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예측에 관련되다 보니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만 가지고는 일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요. 택시기사랑 얘기했더니 이렇다더라 해서 보고서를 그렇게 쓴다는 건 아니구요. 그 분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감을 짚어내는 정도죠.
GDP 동향을 예측할 때는 수 많은 기초자료가 필요합니다. 주로 사용하는 건 산업활동동향에 나오는 숫자들, 물가지수 등등이에요. 통계청과 한국은행에서 나오는 데이타를 기본으로 해서 정기적으로 예측보고서를 내고 그 외에 다른 데이타를 가지고 거시적인 전망을 하는거죠. 수십가지는 되는 것 같아요.
-숫자를 처리하는 자체 툴이 있나요
▲주로 엑셀을 사용하죠. 뉴욕에서 제공해주는 것도 있고 모건 자체에서 모델을 만들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보고서, 98년 8월에 나온 ‘한국수출 가능성 있다’
-이제까지 수많은 보고서를 냈을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보고서가 있나요. 잘한 것이든 실수한 것이든 말입니다.
▲음..기억에 남는 보고서는... 98년 1~2월달에 우리가 금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수출이 막 좋아지다가 2달 정도 지나니까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실제 데이타도 안 좋게 나오니까 난리가 나서 언론은 "한국수출 안 좋아"라는 타이틀로 대거 기사화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분석을 해보니 계절적인 효과나 금 수출로 인한 pay back을 빼고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98년8월 중순에 "한국수출 가능성있다" 라는 보고서를 냈죠. 채권에 관한 보고서였으면 시장에서 바로바로 반응이 오겠지만 이 보고서는 그야말로 데이타 그 자체, 무생물에 관련된 내용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수출이 9월달부터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보고서제출 2주 후에 그런 결과가 나타나니까 정말로 기분이 짜릿하더군요.
99년 5월에는 제가 GDP 포캐스트를 엄청 틀리게 내보낸 적이 있어요. 제가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재고조정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않고 포캐스트를 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만약에 실제 수치가 5.5%였다고 가정하면 저는 6.5~7.0% 이런 식으로 상당히 격차가 벌어지는 수치를 전망한 거에요. 1분기 GDP 전망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매년 5월만 되면 그 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웃음)
-98년 가을에 99년 전체 GDP를 맞추고 얼마 안돼서 1분기 GDP를 못 맞추다니 의외로군요.
▲99년 전체 GDP를 맞춘 건 수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 아니라 향후 추세를 맞춘거죠. 경기가 내려가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 올라가는 시점을 정확히 포착한 거니까요. 하지만 올라가는 속도를 예측하는 것에 실패한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을 하는 대신 그때만 되면 악몽에 시달린다는 건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치열한 성격이라는 의미입니까.
▲2000년 5월에 똑같은 예측을 하는데 그 전해의 실패가 떠오르면서 좀 주저하긴 했어요. "내가 1분기 전망에 좀 약하지" 하면서요.(웃음) GDP 전망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국내에선 숫자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그 GDP 전망을 보고 스트레티지스트들이 권고를 내보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어요. 컨센서스와 반대로 포캐스트를 하면 그들에게 많이 미안하죠.
이코노미스트, 스트레티지스트, 딜러..확실한 영역구분
-JP모건은 국내 여러 하우스 중 드물게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딜러와 이코노미스트, 스트레티지스트를 다 갖췄는데요. 3자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돼 있어 이코노미스트는 딜링룸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가요?
▲딜링 룸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명확한 업무 구별은 있어요. 오히려 제 스스로가 너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자주 마주치게 되면 그만큼 서로의 의견에 영향받게 돼서 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어요.
제가 스트레티지스트의 롤을 하고 스트레티지스트가 딜러의 롤을 하려들면 엉망이 되는건 당연하겠죠. 저는 어느 정도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짧게 보지 않으려면요.
-그럼 서로의 견해가 다르면 트레이더나 스트레티지스트들과 의견 대립도 있겠군요.
▲물론이에요. 몇 시간씩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며 자기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죠.(웃음) 제 역할은 시장이 움직일 때 그걸 잡아주는 겁니다.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그걸 튜닝해야죠. 제일 변동성이 심한 사람이 트레이더고 그 다음이 스트레티지스트들이에요. 저는 좀 길게 보고 가자는 입장인데 시장과 직면한 트레이더의 경우 눈앞에 먹을게 있는데 그걸 지나치기는 힘들어요.
-각각의 직급구별이 없이 서로의 역할 안에서만 이야기합니까.
▲당연합니다. 어차피 세 명 모두 리포팅 라인도 다 달라요. 물론 직급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의견개진에 있어 방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건의 문화 자체가 직책에 좌우되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본인의 연봉이 회사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있습니까.
▲전혀 몰라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남편도 몰라요(웃음)
-통상적으로 대기업 이사급 정도인가요.
▲대기업 이사가 얼마받는지 모르겠는데요.(웃음) 삼성경제연구소에 있었지만 저는 이사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많이 받긴 합니다. 연봉의 변동성은 아까 회의할때와 마찬가지에요. 시장과 직면한 트레이더들이 가장 많이 움직이고 그 다음이 스트레티지스트, 저희는 제일 적게 움직이는 편이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이코노미스트가 되고 싶다”
-이코노미스트로서의 꿈은 뭡니까.
▲10년 정도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이코노미스트가 되고 싶어요. 10년이 지나면 다른 일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무슨 일을 하게될 진 모르겠지만.
-대학강단에 설 계획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없어요. 아직까지는.
-업계에 세미나도 많이 나가실텐데 둘러보면서 인상에 남는 기관은 있던가요.
▲물론 있습니다.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구요.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들 정말 진지하다는 거죠. 제가 학회나 여타 관계자들의 세미나에도 많이 나가봤지만 그 곳보다도 훨씬 치열하게 토론을 하시더라구요. 생업과 연관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준이 상당해서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남편보다 늦게 들어갈때도 있을텐데 이코노미스트라는 직업을 잘 이해해주는 편이신가요.
▲네. 제가 힘들까봐 걱정해주는 편이에요. 저는 아침은 꼭 차려주고 나와요. 저녁을 같이하지 못할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차려주는 걸 너무 좋아하더라구요.(웃음)
-만약 나중에 따님이 이 일을 한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저는 비단 이 직종이든 아니든 뭘 한다해도 말리지는 않겠어요.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자기가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라면 연예인이 된다고해도 간섭하지 않을 작정이구요. 좋아하면 열심히 할테고 열심히 하다보면 성공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무슨 일을 해도 본인이 좋아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임지원 박사 약력)
-64년 출생(본적 대전)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87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83학번)
-95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경제학박사
-96년2월~98년1월 삼성경제연구소
-98년2월~99년1월 JP모건 홍콩
-99년2월~ JP모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