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 따랐다 중형 위기인데...尹, 군경 지휘관 진술 '나몰라라'

by한광범 기자
2025.04.05 11:11:50

[尹대통령 파면] 헌재, 尹의 모르쇠 주장 조목조목 반박
尹 주장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지휘관 진술에 신빙성
"큰 형님 리더십 자처하던 윤석열 어디갔나" 비판 나와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헌·위법적 12.3 비상계엄으로 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군경의 국회 침탈과 체포명단 14인 지시와 관련해 이를 부인하며 해온 주장의 요지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당시 자신의 명령을 따랐다가 내란죄 공범으로 전락한 군경 지휘관들의 주장을 부인하며 이들의 진술이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과 법정은 물론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법원과 군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형사재판이 아직 초기단계인 상황에서, 헌재가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이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을 내놓았다. 윤 전 대통령의 주장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이 헌재의 결론이었다.

헌재는 우선 윤 전 대통령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에게 한 지시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피청구인은 2024. 12. 4. 00:30경 특전사령관 곽종근에게 전화로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고, 곽종근은 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에게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겠냐’와 같이 말하는 등 위 지시를 이행할 방법을 논의했다.”

그리고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열린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부대들과의 화상회의가 끝나고도 곽종근의 마이크가 계속 켜져 있었기 때문에 곽종근이 피청구인의 지시를 받고 김현태 등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행한 발언들이 예하부대들로 그대로 전파되고 있었다.”

“곽종근 및 김현태는 국회 출동 시 ‘시설 확보 및 경계’ 지시를 받은 후 한동안 추가 지시가 없어 구체적인 임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하는바 피청구인의 위 지시가 없었더라면 곽종근이 갑자기 김현태와 안으로 들어가 150명이 넘지 않게 할 방법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

“의결정족수라는 용어 및 당시 본회의장 안에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존재했고 군인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 등을 고려하면 끄집어낼 대상은 국회의원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곽종근은 2024. 12. 9. 검찰 조사에서부터 증인신문이 행해진 이 사건 제6차 변론기일까지 피청구인의 지시 내용을 일부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 대한 지시 사실관계에 대해선 아래와 같이 결론내렸다.

“피청구인은 이진우가 국회에 도착한 후 전화로 상황을 물어보았고 이진우가 국회 담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어 경내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하자, 얼마 후 재차 전화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했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명령에 따랐다가 내란 중요임무종사자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육군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사진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모습. (사진=헌법재판소)
윤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증거를 통해 일축했다.

“이진우가 피청구인과 통화하는 동안 같은 차량의 앞좌석에 앉아 있던 이진우의 전속부관이 통화 내용 대부분을 들을 수 있었다.”

“이진우는 김용현으로부터 구체적인 임무 없이 국회로 가라는 지시만 받아 일단 수도방위사령부의 본래 임무인 핵심시설의 ‘외곽’을 경계하고자 했다고 하는바 피청구인의 지시가 없었더라면 이진우가 갑자기 제1경비단장 조성현에게 건물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할 이유가 없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에게 한 지시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피청구인은 2024. 12. 3. 19:20 무렵 경찰청장 조지호,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을 서울 종로구 소재 대통령 안전가옥으로 불러 오늘 밤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하면서, 군인들이 국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 나갈 것인데 경찰이 국회 통제도 잘 해 달라고 했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김용현은 피청구인이 보는 가운데 조지호, 김봉식에게 A4 용지 1장으로 된 문서를 건넸는데, 해당 문서에는 군인들의 출동시각과 출동장소를 의미하는 ‘2200 국회, 2300 민주당사’ 등과 같은 기재가 있었다.”



헌재는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피청구인은 조지호, 김봉식을 대통령 안전가옥으로 불러 국회 통제를 잘 해 달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김용현이 그림을 그려가며 어느 곳에 경력을 배치할지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피청구인은 박안수(계엄사령관)로 하여금 국회 활동 금지가 포함된 이 사건 포고령을 조지호에게 알려주라고 한 점, 조지호가 계엄해제요구권 등을 인지하고 국회의원의 출입은 허용했던 상황에서 재차 출입을 차단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로 국회를 통제해 내란 중요임무종사자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사진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당시 모습. (사진=헌법재판소)
헌재는 국회에 군을 보낸 이유가 ‘질서유지 차원’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지시 내용은,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 어느 누구도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이 사건 계엄 선포 며칠 전부터 대비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받았고, 이 사건 계엄 선포 전에 이미 출동 지시를 받은 부대도 있었다.”

“피청구인이 언급한 280명은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의 의결 직전 무렵까지 국회 경내로 진입한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군인 270여 명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피청구인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국회 경내로 진입하라고 전화하는 등 280명만의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중요시설로서 평상시에도 철저한 경비가 되고 있는 국회에 대해 단순히 질서유지만을 목적으로 본래의 경비인력 및 추가된 경력(警力)을 넘어 군인까지 투입시켰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청구인은 구체적인 임무를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이 실제 비상상황을 전제로 마련된 매뉴얼대로 행동하기를 용인하였는바, 실탄 지급을 금하거나 병력을 철수한 것 모두 피청구인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군인들 스스로가 상황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0월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치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배경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은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쪽지도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헌재는 아울러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관련한 사실관계에 대해선 헌재는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피청구인은 2024. 12. 3. 20:22경 국정원 1차장 홍장원에게 전화로 ‘한두 시간 후 전화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비화폰을 잘 챙기고 있으라’고 했고, 같은 날 22:53경 다시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 발표하는 것을 보았느냐며 이번 기회에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자금이든 인력이든 국군방첩사령부를 도와 지원하라는 취지로 말했다.”

“김용현은 이 사건 계엄 선포 직후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에게 총14명의 명단을 알려주면서 ‘포고령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사람들로서,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진 뒤 위반혐의가 발견되면 체포할 수도 있으니 미리 위치 등 동정을 파악해 두라’고 지시했다. 명단에는 국회의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회의원 이재명,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조국혁신당 대표 국회의원 조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국회의원 박찬대, 전 대법원장 김명수, 전 대법관 권순일 등이 포함돼 있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 전 차장은 비상계엄 해제 직후 윤 전 대통령의 체포명단 지시를 처음으로 폭로했다. (사진=뉴스1)
헌재는 이를 부인하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반대 증거를 통해 일축했다.

“피청구인이 홍장원에게 2024. 12. 3. 첫 번째 통화에서 한두 시간 후 전화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대기하라고 지시한 뒤 이 사건 계엄 선포 직후 재차 전화를 했고, 피청구인은 여인형과 홍장원이 육군사관학교 선후배관계에 있어 특별히 홍장원에게 국군방첩사령부 지원에 관해 언급했다고 했다.”

“피청구인은 해외 출장 중인 줄 알았던 조태용을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서 만났고 홍장원과의 두 번째 통화 직후 조태용과 통화하기도 했는데 조태용에게는 아무런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고 했다. 피청구인은 처음부터 홍장원에게 계엄 상황에서 국군방첩사령부에 부여된 임무와 관련된 특별한 용건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 봄이 상당하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자신의 명령을 따랐던 지휘관들과 진실게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군경 지휘관들은 윤 전 대통령의 명령을 따랐다가,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내란 중요 임무종사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 한 인사는 “사법적 영역에서 무죄를 다투는 것은 피고인으로서의 권리라고 볼 수 있지만, 군통수권자인 자신의 명령을 따랐다가 인생이 처참하게 망가진 군인, 경찰들에 대해 최소한의 사죄가 필요하지 않나”라며 “큰 형님 리더십을 자처하던 윤석열은 어디 갔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