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말하는 中道의 미학

by오현주 기자
2012.03.16 11:43:18

`이왈종 개인전`
20년째 제주풍경 그려
유일한 취미 골프도 작품 전면에
자연과 하나된 삶 닮은
회화·부조 등 60여점 선봬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4일자 32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2012). 동양화가 이왈종의 그림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여느 동양화의 이상향과는 달리 다분히 `생활밀착형`이다(사진=갤러리현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서귀포 화가 이왈종(67). 그가 상경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안빈낙도의 삶 그대로를 들고 왔다. 그의 그림엔 여전히 꽃들이 화사하고 새들이 날며 행복한 일상에 묻힌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재는 물론이고 주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이는 지난 20년간 그를 움직여온 대주제이자 뿌리다.

작가가 제주도로 낙향한 건 1990년. 정방폭포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낡은 양옥집 한 채를 사들이며 정착했다. 1970년부터 20년간 재직하던 서울의 대학교수 자리를 한순간에 내던진 직후였다. 그렇지만 제주생활이 처음부터 만만하진 않았다. 벗어나버린 화단의 관심, 타지란 공간이 준 외로움 때문에 초기엔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누구도 의심치 않는 온전한 제주사람, 서귀포 화가가 됐다.

2년 만에 그가 개인전을 연다. 다작으로 소문난 대로 근작 회화는 물론 부조·목조·도자기·향로까지 60여점을 내놓았다. 작품마다 가득 채우고 있는 나무·꽃·풀·사람·새·소·개·집·자동차가 여전하다. 사물보다 결코 비중이 크지 않은 사람도 그대로다. 아니다. 어느 것은 사물에 비해 턱없이 작다. 이는 제주시절을 관통한 한 가지 생각 때문이다. 인간 만물은 모두 똑같은 존재라는 거다. 더 클 필요도 없고 더 작을 필요도 없는 `중도` 그것이다. 아무 집착이 없는 무심의 경지 말이다.



중도 세계에 들어 있는 그의 모든 사물과 일상은 지극히 평화롭다. 대청마루에서 겹상을 하고 있는 부부, 마루를 훔쳐내는 아낙은 물론 풀벌레와 뛰노는 사슴까지 편안해 보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새들과 뒤뜰에 놓인 항아리까지 안온하다. 행복에 겨워 샤갈의 그림처럼 하늘을 나는 연인, 하늘을 나는 물고기도 있다.

▲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2012)(사진=갤러리현대)

이번 전시에서 도드라진 것이 있다. `골프`다. 예전엔 간간이 등장했던 골프 치는 사람들이 작품 전면에 드러났다. 90년대 후반 발을 들여놨다는 골프는 사실 작가의 유일한 취미다. 골프공에 그려 넣은 춘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도의 세계관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흔들어서일까. 그는 근래 더욱 잘 나가는 작가다. 지난 1월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1년 사이 화가 이왈종의 그림값은 246%가 뛰었다. 국내 작가 중 가장 높았다. 그의 다음 자리를 차지한 작가로는 이우환(185%), 이대원(158%), 박생광(135%), 도상봉(119%) 등이 있었다. 이미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 근대 화가에 미쳤던 관심이 그에게로 옮겨갔다는 의미가 읽힌다.

작가에게 궁극의 중도는 “평등을 추구하는 자신의 평상심”이다. 주체나 객체가 없고 크고 작은 분별도 없는 절대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매일 매시간 그림을 그리자,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끊자, 선과 악이나 쾌락과 고통, 집착과 무관심의 갈등에서 벗어나 중도의 길을 걷자고 되뇌는 모양이다. “좋은 작품은 평상심에서 나온다.” 어느 날의 화제(畵題)가 어느덧 철학이 됐다. 4월1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