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기 맞은 ‘벤처신화’ 쿠팡…‘구조적 전환’ 시점 왔다

by김정유 기자
2025.12.04 06:00:58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로 고개숙인 ‘혁신의 상징’
‘보안·노동·정치’ 3대 악재 휩싸이며 코너 몰려
대관·법무 등 방어만 몰두, 내부시스템 외면 지적
국민 편의 높였던 쿠팡, 컴플라이언스 중심 변화 필요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쿠팡의 대위기다. 창업 후 불과 15년만에 매출 40조원대의 ‘유통 공룡’으로 도약한 쿠팡의 ‘벤처신화’가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보안사고가 결정적이긴 하지만, 현재 쿠팡의 위기는 그간 억지로 눌러왔던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보안사고에 이어 노동(근로자 사망사고)·정치(퇴직금 미지급 관련 특검 수사) 영역까지 ‘3대 악재’가 최근 집중되며 쿠팡을 향한 불신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이에 쿠팡이 일궈낸 ‘로켓 생태계’가 다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조직 구조·문화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쿠팡 관련 긴급 관계부처 장관회의가 열린 가운데 박대준 쿠팡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33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일으킨 쿠팡은 이번 사안을 기점으로 기존의 전략과 기업 체계가 대폭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소셜커머스로 시작한 쿠팡은 2014년부터 직매입·자체 물류 기반 ‘로켓배송’을 론칭하며 기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의 혁신을 선도해 온 업체다. 로켓배송에 대규모 투자를 먼저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멤버십(와우)·신사업·해외 진출 등으로 확장하는 속도전을 펼쳐왔다.

쿠팡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김범석 쿠팡 창업자(현 쿠팡Inc 이사회 의장)는 로켓배송 론칭부터 철저하게 아마존의 방식을 벤치마킹했다”며 “고객 편의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면 단기적인 적자는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갖고 ‘계획된 적자’ 전략을 펼친 것 역시 아마존의 초기 성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적자와 대규모 투자 유치 등이 반복되는 상황이 꽤 길어지면서, 수익화 단계(2022년 3분기 첫 흑자전환)에 돌입한 쿠팡은 빠르게 고성장 전략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물류·배송 중심의 초고속 확장을 거둔 쿠팡이 전통적인 유통사들을 누르고 시장 1위를 차지하게 했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새벽배송·물류센터 업무를 둘러싼 과로·산재 의혹이 연이어 터지고, 자회사(쿠팡CFS) 물류 일용직 직원 퇴직금 미지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노동 관련 잡음은 계속됐다. 특히 퇴직금 미지급 논란은 최근 검찰 불기소 외압 의혹으로 번지면서 상설 특별검사 출범까지 이어졌는데,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리스크(위협)까지 짊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3370만명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터졌다. 보안·노동·정치 영역에서 3대 악재를 한번에 맞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선 쿠팡이 그간 대관·법무로 틀어막아 곪아왔던 상처가 이번 보안사고로 한꺼번에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몇년새 고성장에 심취한 나머지, 내부 체계나 컴플라이언스(준법) 요소들을 되돌아보지 않고 ‘방어’(대관 등)에만 몰두했던 것이 패착이라는 지적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카카오가 급성장에만 치우쳐 수많은 사건 사고가 터졌던 사례가 있는데 쿠팡도 마찬가지”라며 “시장내 경쟁자를 빠르게 배제해 선점해야 하는게 플랫폼 기업들의 전략”이라며 “쿠팡은 대관 기능에만 열심히 투자를 해왔지, 소비자들이 모르는 보안이나 노동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호택 계명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커머스 업체라면 상품기획자(MD) 등 내실을 기하는 분야 인력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맞는데, 그간의 쿠팡은 대관 분야 인력들이 비대하게 많았던 것 같다”며 “이번 개인정보 유출만 해도 아주 본질적인 역량에서 틈새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쿠팡은 한때 스타트업계에서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며 선망받던 기업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빠른 배송을 선보이며 실생활의 혁신을 가져다준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근까지 ‘고성장’에만 심취했던 쿠팡의 전략과 구조 자체를 이번 사고를 기점으로 대변혁시켜, ‘제2 도약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간 돈을 버는 능력은 진화해 왔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역량이 부족했던 만큼 ‘컴플라이언스’(준법) 시스템 강화 중심으로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은 “최근의 위기는 쿠팡의 외형 성장에 비해 내부 시스템이 못 따라간 것이 이유”라며 “매출 40조원에 걸맞도록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고객 관리 등에 투자해 재정비를 해야한다. 특히 보안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면 부족한 부분에 대해 평가하고 보완하는 후속조치가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는 고성장 전략 중심의 기존 기업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비자 외형 확대에 몰두하고 대관 통해 정부 규제 막는 데에만 치중하지 말고 최근 몇년새 노동자 과로 사고 등이 왜 일어났는지 진심으로 돌아봐야 한다”며 “지금 기업문화 전반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분명 쿠팡은 성장 한계가 올때 위기를 크게 맞을 수 밖에 없다. 이젠 구조적으로 대변혁기를 가져야만 향후에도 쿠팡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