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는 왕이 될 상인가?

by김정민 기자
2025.04.15 08:00:00

정통 관료 출신의 대권도전, 늘 실패[전문기자칼럼]
고건·반기문, 대권 후보 부상 후 정치 공세에 중도하차
한 총리 공직 경력은 통상외교 역사..한국 경제 큰 자산
한덕수, 실패한 정치인 아닌 성공한 관료로 퇴장하길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대권 후보로 차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리실 제공)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정통 관료 출신의 대권 도전은 늘 동일한 수순으로 실패했다.

비정치인 관료 출신이 부상하는 시점은 여권 내 유력 대권 후보가 없을 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고건 전 국무총리,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그랬다.

‘대통령 탄핵’이 출발점이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누를 수 있는 카드가 없던 열린우리당에선 고건 차출론이 고개를 들었다.

반기문 전 총장이 보수의 희망으로 떠오른 시기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다. 분열한 보수진영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아름답지 않았다. 둘 모두 불출마 선언 후 중도하차했다.

대권 후보로 부상하자 쏟아지는 정치 공세와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본인 뿐 아니라 가족, 지인들까지 모두 타깃이 됐다. 고건과 반기문은 끝내 정치의 언어와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상처 투성이로 물러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항마로 보수진영 후보 지지율 1위다. 고건, 반기문 때와 같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고건보다 관료적이고, 반기문보다 조용하다.



그러나 대권가도에 뛰어들면 정치의 언어로 말하고 정치인으로 행동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 ‘소득주도 성장’ 같은 추상적 아젠다가 정치인의 입에선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탈바꿈한다.

필요하지 않은 곳에 공항을 짓고 철도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고건과 반기문은 불가능했고, 한덕수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고공 지지율은 언론이 만든 ‘비교 우위’의 산물일 뿐, 본선 경쟁력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소명’은 다른 곳에 있다. 스스로도 안다. 14일 국무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은 미국발 글로벌 통상전쟁 대응이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이라고 했다.

한 권한대행의 공직 경력은 한국 통상 외교의 역사다.

1993년 주미대사관 경제공사로 한미 반도체·자동차 통상 분쟁에 대응했고, 1997년 통상산업부 실장으로서 OECD 가입 이후 통상정책 체계를 정비했다.

1998년에는 산업자원부 본부장으로 WTO 및 APEC 다자통상협상을 이끌었고, 2001년에는 외교통상부 본부장을 맡아 도하개발아젠다(DDA)와 한-칠레 FTA 협상을 준비했다.

경제 부총리 시절에는 FTA 전략과 재정정책의 연계를 조율했다. 2007년 첫 국무총리 재임 때는 한미 FTA 최종 조율자로서 산업보완책 마련을 진두지휘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포문을 연 통상전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라 안보·기술 패권이 얽힌 ‘복합 위기’다. 이러한 복합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행정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적 통찰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권한대행은 1970년 공직에 입문해 55년 동안 공직의 정점인 국무총리만 두 번째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선거를 치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도 경험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실패한 정치인이 아닌 성공한 관료로 박수받으며 떠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