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원다연 기자
2025.11.30 16:10:19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쿨해 보여서 미국에 투자한다고요? 국장은 언제 또 빠질지 모르니 믿고 투자할 수 없어서 미장에 넣는 겁니다.”
올해 코스피 ‘불장’에도 미국 증시에만 투자하고 있다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환율 급등의 원인을 ‘서학개미(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 탓으로 돌린 금융당국자들의 발언에 이렇게 반박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고환율 흐름과 관련해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한미 금리 차 때문도 아니고 외국인에 의한 것도 아니라 단지 해외 주식 투자가 많아져서다”라며 “젊은 분들이 해외 주식 투자를 많이 해서 왜 하냐고 물어보니 ‘쿨하잖아요’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이런 것들이 유행처럼 막 커지는 면에서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 위로 치솟은 가운데 금융당국자들이 서학개미를 원인으로 꼽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시장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학개미에 대한 세제상 패널티 가능성을 언급했다 논란이 커지자,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추가 과세를 검토한 바 없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열기는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68억 13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11월에도 55억 24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미 금리차 확대와 글로벌 유동성 변화로 원화 약세 압력이 구조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서학개미들은 금융당국이 고환율의 상당 부분을 개인 투자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지적한다. 해외 투자를 ‘쿨함을 좇는 유행’ 정도로 치부하는 것 역시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올해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으로 국내 증시가 주요국 대비 선전했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책 효과로 인한 반짝 성과일 뿐이라는 냉소가 깊다. 기업가치 대비 만성적 저평가, 낮은 주주환원, 반복되는 규제와 정책 급선회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언제 다시 박스권에 갇힐지 모른다는 불신이 개인 투자자를 해외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금융당국자들은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 서학개미를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이들이 돌아올 만한 시장 환경을 만드는 데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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