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새롬 기자
2018.08.09 08:00:02
무단 침입 '예사'…보수·수리 요구에 '묵살' 기본
대학가 원룸에 사는 대학생 강지민(23)씨는 며칠 전 귀가 후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16.53㎡ (약 5평) 남짓한 집안을 둘러보니 신발장에 놓여있던 신발 배열이 달라져 있고 빨래를 말리려 펴놓은 건조대도 접혀 있었다.
'우리 집 비밀번호는 나밖에 모르는데...'
혹시나 누가 집에 침입해서 자신을 지켜보는 오싹한 생각까지 든 강씨는 두려움에 떨며 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긴 학생 집보다 내 건물이야"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 본 강씨는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동안이지만 온갖 걱정과 두려운 기분을 느껴야 했던 것과 달리 집주인은 무단 침입을 너무 나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강씨는 "세입자가 어리고 돈 없는 대학생이라 더욱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며 "계약기간 동안은 내 집인데 자기 건물이니 자기 집이라 생각하는 건물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본인 소유의 건물이라도 세입자의 방에 사전 허락 없이 들어가는 행위는 주거침입에 해당한다. 그러나 웬만해선 학생들이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을 알고 뻔뻔하게 나오는 건물주들이 아직 많은 게 현실이다.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방을 '내 집'이라 생각하고 휘두르는 주인 의식은 갑질로 이어진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44.6%의 대학생들이 원룸에 세들어 살면서 피해를 경험한 적 있다.
강씨 말고도 집주인의 무단침입을 경험한 대학생들은 한둘이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보미(24)씨는 1년 전 주말 집에서 샤워를 하던 중 밖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집주인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당연히 받을 수 없자 찾아온 것이다.
김씨는 "며칠 전이라도 미리 말을 해주면 괜찮은데, 꼭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문을 따고 들어와야 하느냐"며 "현관 안전고리를 걸어 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방 보수·수리 요청하면 '묵묵부답'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학생이 방을 너무 함부로 쓴 거 아냐"
원룸 임차인은 적게는 3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까지 관리비를 낸다. 그러나 이를 내고도 정작 기본적인 요구 사항에는 귀를 막는 집주인이 많다. 2015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세입자가 가장 많이 겪은 피해 상황이 바로 '수리 요청 거절'이었다.
건물 청소와 기타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관리비 5만원씩 냈던 대학생 이가현(24)씨는 "관리비 입금이 하루라도 늦으면 바로 문자나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거기까지는 정당한 행위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어컨이 고장 났다' '화장실 문이 고장 났다' 등 집 수리를 요구하면 연락을 피하는 집주인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대학생 이주연(24)씨는 얼마 전 세탁기가 고장 나 집주인에게 전화했다가 되레 궂은 소리를 들었다. 세탁기 수리에 20만원 가량 든다고 하니 "대체 어떻게 썼길래 고장이 나는 거냐. 난 돈 못 내니 알아서 하라"고 집주인의 호통이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원룸에 살고 있는 윤혜리(23)씨는 얼마 전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했다. 며칠 동안 대야로 물을 받아내도 그치지 않아 건물주에게 전했더니 "윗집에 한 번 얘기해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참다 못한 윤씨가 다시 건물주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말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으니 일단 사람을 불러보라"는 대답 뿐이었다.
이처럼 평소 건물 관리를 소홀히 해 고장 난 시설, 열악해진 집 상태를 세입자 탓으로 돌리는 건물주 때문에 심리적, 금전적으로 피해를 입는 경험은 대학생들에겐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건물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집주인이 보수를 책임져야 한다. 민법 제623조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사생활 간섭하는 '오지라퍼' 집주인
웹드라마 '자취,방'에서는 건물주 할아버지가 주인공 방에 확인할 게 있다며 막무가내로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또 라면만 먹는 거냐' '옷이 하나밖에 없는 거냐' '젊은 사람이 너무 방구석에만 있는다' 등 온갖 잔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는다.
비단 드라마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도 이런 '오지라퍼 건물주'들은 존재한다.
대학가 오피스텔에 사는 정수현(25)씨는 혼자 요리를 해 먹기 귀찮아 배달 음식을 일주일에 1~2번 꼴로 시켜 먹는다. 며칠 전 우연히 마주친 건물주 아주머니로부터 "너무 배달 음식만 먹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정씨는 "걱정보다는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졌다"며 "CCTV를 통해 다 지켜본 것 아니냐"고 했다.
2년 전 원룸에서 자취했던 대학생 김혜인(24)씨는 갑자기 건물주로부터 "방 청소 좀 하고 살라"는 소리를 듣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김씨가 집을 비운 사이 부동산 관계자와 함께 무단으로 집을 보러 왔었던 것이었다. 김씨는 "말도 없이 집에 들어와 놓고 다짜고짜 잔소리부터 하는 게 어이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