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여배우들 예뻐지려고 줄 서지요
by장영은 기자
2012.05.11 12:20:00
(별난사람 별난직업)선덕 메이크업 아티스트
초보때 무대 메이크업 끌려 분장사 영역 뛰어들어 성공
호기심에 도전할 직업 아냐 돈을 바라면 다른일 찾아야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11일자 2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맛집, 애플의 신제품, 명품가게.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과 편리한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참을성이 없어졌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인내심을 발휘하게 하는 곳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여기 예뻐지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는 곳이 있다. 성형외과 이야기가 아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덕 원장(사진) 앞이다. 그녀는 말한다.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여배우들에게는 솔직하고 간절한 욕망"이라고. 그래서일까, 무대 메이크업을 하던 시절부터 그녀 앞에는 언제나 화장을 받으려는 여배우들이 줄을 섰다. 지금도 선 원장은 한채영, 이소연, 현영 등 톱스타들의 메이크업을 전담하고 있다.
선덕 원장의 이력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뮤지컬 명성 황후다. 처음 명성황후의 메이크업을 맡을 때 그녀의 나의는 고작 26살. 당시 무대 메이크업은 수십년 경력의 `분장사`들이 알음알음으로 돌아가면서 하던 때였다. 그런데 풋내 나는 젊은 아가씨가 그것도 대작 뮤지컬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였다.
그렇다고 운이 좋았거나 든든한 `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식할 정도의 열정이 그녀를 이끌었다. 선 원장은 "그 작품이 너무 하고 싶어서 혼자 대본을 입수해서 등장 인물분석까지 하나하나 했었다"고 회상했다. 분석을 마친 후에는 각 인물별로 메이크업 콘셉트, 필요한 재료와 견적 데이터까지 뽑았다. 이 자료를 들고 기획사 문이 닳도록 드나든 결과 겨우 면접 기회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녀는 10년 간 무대 메이크업을 하면서 첫 작품이었던 `하늘을 나는 양탄자`부터 `홀스또메르`와 `문제적인간 연산`을 거쳐 `명성황후`와`아이다` 등의 대작까지 수많은 작품을 했다. 이윤택, 유인촌 등 유명 감독 및 제작자들에게도 실력으로 인정 받으며 좋은 파트너십을 보였다. 작품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열정이 없었다면 20~30대 어린 나이에 이처럼 쟁쟁한 작품들을 도맡아 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로도 선 원장은 연극이나 연예인 메이크업 들어가기에 앞서 항상 작품의 대본을 구해 꼼꼼히 읽는다. 선덕 원장은 "유명 단골 연예인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배우들이 (작품에) 더 잘 어울리게 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작품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그녀는 연예인들에게도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상이다. 술자리에서 고민상담은 물론 연기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도 아끼지 않는 친한 언니 혹은 멘토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
선 원장은 말한다. "메이크업을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을 메이크업 하더라도 전체 배경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어울리면서도 돋보일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고. 맞는 말이다. 연극이나 드라마는 초상화가 아닌 풍경화다. 정해진 풍경을 먼저 보고 어울리도록 그려 넣어야 배우가 작품 속에서 더욱 빛날 수 있을 터다.
선덕 원장은 신부 메이크업으로도 유명하다. 아니, 처음에는 악명이 높았다. 꿈에 부푼 신부가 상담을 받으러 가면 비수 같은 말을 면전에서 꽂기 일쑤였다. 좌우 대칭이 많이 안 맞는다, 피부가 안 좋다, 눈이 너무 작다는 식이다. 지금은 그동안의 평판이 쌓여 `감당할 수 있으면 추천한다`는 식의 평가를 듣고 있다고.
그녀는 이런 자신을 `리얼리스트`라고 표현했다. "듣기에만 좋은 말보다는 현실적인 말과 확실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자신의 결점을 알아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어느때부터인가 다른 곳에서 첫 촬영을 망치고 찾아오는 신부들도 꽤 많다고 한다.
최근에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선 원장은 최근 애경과 손잡고 `리얼 페이스`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선 보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그녀가 처음 내놓은 제품은 다름아닌 클렌징폼이다. 그녀는 "솔직히 바탕인 피부가 가장 중요하다"며 "무대 메이크업을 하던 시절부터 항상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도 꿈은 이뤄진다는 식의 이상적인 격려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거침없는 협박(?)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이 길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배고프고 힘들다"고. 그녀는 "돈을 바라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괜한 호기심이나 동경으로 섣불리 발을 들여 놓았다가는 시간 낭비만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선 원장 자신도 오늘의 자리에 오기까지 남들의 배 이상 노력했다.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하루에 두시간도 채 봇 자면서도 두세개씩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생활비를 벌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일이 좋았고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신부와 후배들을 향한 그녀의 따끔한 조언은 악의에 찬 독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깊은 애정과 배려였다.
▲선덕(宣悳) 메이크업 아티스트, 에스휴 원장
연간 3000여명의 웨딩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국내 3대 웨딩 메이크업 전문 `에스휴` 원장. `명성황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토요일밤의 열기`, `맘마미아` 등 다수의 대형뮤지컬과 연극, 영화의 메이크업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