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무너지는 가계.."소비여력이 없다"
by양미영 기자
2008.03.03 10:44:50
사교육비 연간 20조원..'거대한 블랙홀'
소비 위축에 성장률도 주춤
교육비 부담에 노후대비는 꿈도 못꿔
[이데일리 양미영기자] 사교육 열풍이 온나라를 휩쓸고 있다. 학원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학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사교육 열풍은 곧바로 경제문제로 직결된다. 노후대책, 출산저하, 성장률 둔화 등 당면한 현안들이 교육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사교육 열풍이 경제에 미치는 파급과 개선방안을 5회의 기획시리즈로 진단해 본다.
자식 교육에 가계 살림이 무너지고 있다. 소득의 상당부분이 사교육에 쏟아 부어지고, 가뜩이나 오르는 물가에 더해 교육비 상승률은 가히 살인적이다.
한국 교육사회는 이른바 '사교육 공화국'으로 대변된다.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의 교육풍토로 부모들은 자신의 몸이 타는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사교육 열풍에 뛰어든다.
그러나 가계 소득이 기형적으로 교육비에 집중되면서 한국 경제도 알게 모르게 곪아가고 있다. 소비 위축은 물론 경제 성장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생산적인 처방과 대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의 도시근로자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교육비 지출은 전년대비 10.1%가 늘었다. 월평균 소비지출 증가율인 5.8%의 두배에 가까운 증가 규모다.
이들 도시근로자 가구는 한달에 235만원 가량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교육비에 해당하는 금액은 무려 28만원이 넘었다.
세부항목별로 살펴보면 사교육비 부담 증가가 두드러진다. 사립대학 등록금 등 납입금 지출 증가율도 10%를 웃돌았지만 보충교육, 특히 학원과 개인교습에 이용되는 교육비 지출 증가율은 13% 증가에 달했다.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증가율은 10%대 중후반으로 높아진 상태다.
이처럼 교육비 지출이 늘어난 것은 대학등록금 인상과 함께 전반적인 사교육비 상승 영향이 크다.
2007년 한 해 동안 교육물가상승률은 6.0%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2.5%의 2배가 넘었다. 교육물가 상승률이 6%대까지 높아진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특히 지난 2005년을 기점으로 연간 교육물가지수 상승세가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최근 통계청의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실질적인 사교육비는 월평균 22만원선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체 사교육비 규모만 20조400억원에 달한다. 전체 학생 가운데 10명중 8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참여시간도 주당 7.8시간으로 8시간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질적인 사교육비는 통계청 수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소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유치원~중학교 사이에 매월 부담하는 사교육 금액은 20~40만원에 달했고 고등학생은 40~60만원 사이였다. 그러나 월 100만원을 초과하는 비율도 고등학생의 경우 20% 비중에 육박했다.
특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추산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교육비 지출은 2003년 현재 2.9%로 OECD 국가 중에 최고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이 0.7%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GDP에서 차지하는 총교육비 비중도 7.5%로 미국을 넘어섰다. 민간교육비에 개인과외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GDP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크다.
지난 2006년 명목GDP와 학생수 등을 근거로 현대경제연구소가 추정한 국내 사교육시장 규모는 이미 30조원을 넘어섰으며, 최대명목 GDP의 3.95%에 달했다.
문제는 이같은 사교육비의 과도한 지출이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교육비가 월평균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하고,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부업을 하는 가구도 2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현대경제연구소, 2006년 기준)
특히 고령화 사회로 노후대비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지만 사교육비 부담으로 노후자금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기퇴직 바람으로 은퇴시 만들 수 있는 노후대비용 종잣돈이 턱없이 부족한데 교육비는 여기에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자녀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40대의 교육비지출이 제일 높고, 가장 적극적으로 저축해야 할 30~40대가 지고 있는 과다한 교육비 부담으로 노후설계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노동연구원)
또하나의 아이러니는 고령화를 유발하는 저출산 역시 사교육비 등 양육비 부담 문제로 출산을 기피하는 부부가 늘어나는 데서도 기인한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비 비중이 증가할 수록 저축은 줄 수밖에 없고, 소비도 위축된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규모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는 저축율 하락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교육비가 1% 늘면 저축률은 0.02~0.04%가 떨어지면서 가계 소비 역시 위축시킨다. 과도한 교육비 가 생산적인 재화나 서비스 지출을 줄여 가계소득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는 것이다.
이밖에 사교육이 만들어낸 지하경제 규모도 상당히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지불 방법의 경우 전체 가구의 70%가 현금지불이었다. 이 가운데 현금영수증을 받는 곳이 7%도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약 44% 정도의 사교육비가 지하경제를 형성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현대경제연구소의 추정대로 명목GDP의 3.95%가 전체 사교육시장 규모라면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인 1.74%, 약 14조7000억의 사교육비가 지하경제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사교육의 특성상 전체 시장의 양성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교육시장 자체를 맹목적으로 축소시키는 것도 시장 논리에는 어긋난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 일부가 여타 다른 생산적인 부분에 투입된다면 이에 따른 경제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철선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사교육비가 여타 생산부문에 투입됐을 때 발생하는 경제성장 효과를 수치화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영향이 긍정적일 것은 당연하다"며 "저축을 통해 기업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내재 관련 산업의 파급효과도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자금 흐름이 끊기면서 소비지출이 줄어버린 경로를 정반대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며 "사교육비가 외식이나 여가, 여행 등의 여타 경로로 전달된다면 효과가 더욱 커지게 된다"고 판단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모든 사교육비가 생산부문에 투자되는 것을 가정하기는 힘들지만 반도체 등 특정산업 부문으로 2~3%만 투입되도 생산파급 효과가 상당히 크다"며 "다만, 사교육비가 비용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인력양성이란 점에서 투자의 측면도 있다는 점은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