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건물 빼곡한 도심...헬기 사고에 무방비 노출

by김동욱 기자
2013.11.17 16:37:57

민·관 헬기 10년새 3배
사고 22건...사망자 18명
555m '제2롯데월드' 허용
사고 우려에 정부는 방관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인재냐 천재냐. 지난 16일 발생한 헬기 초고층건물 충돌사고 이후 책임공방이 불거지고 있다. 안전운행 불감증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헬기를 비롯한 민간항공에 대한 정부의 사전대책 마련 소홀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안전운행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수도권 도심은 항공기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9년 555m 높이의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건축이 허용되면서 비슷한 비행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수수방관으로 일관해왔다.

이날 발생한 사고는 LG전자 소속 시콜스키 헬기가 오전 8시46분 김포국제공항을 이륙해 잠실헬기장으로 이동 중 8분 뒤인 8시54분 삼성동 아이파크와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사고 헬기는 잠실헬기장에서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대형공조시스템 사업장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충돌 지점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한강을 따라 비행을 하다가 잠실헬기장 인근에서 경로를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종사가 왜 경로를 이탈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비행 당시 서울 도심은 짙은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1.1km로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사고 현장인 삼성동의 가시거리는 800m에 불과했다. 다만 정황상 조종사가 시계비행 중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경로를 다소 이탈했다는 추론은 할 수 있다. 헬기가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사고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항공법상 헬기는 일반 항공기와 달리 조종사가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더라도 규정 위반에 적용되지 않는다. 조종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계비행시 조종사가 시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정윤식 중원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헬기를 조종할 때 조종사가 장애물을 피하거나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고도를 낮춘다”며 “이번 사고도 조종사가 고도를 낮춘 것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헬기는 최근 등록대수가 급증했다. 지난 2003년 민·관의 헬기 등록대수는 64대 수준이었는데 지난 5월 기준 10년 새 182대로 3개 가까이 증가했다. 헬기 등록대수가 늘어나면서 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같은 기간 발생한 헬기 사고는 총 22건, 사망자는 18명에 달했다. 사고 대부분은 농약살포·자재운반·산불진화 등 특수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최근엔 지난 5월 산림청 소속 헬기가 산불진화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경북 안동 임하댐에 추락해 조종사 2명이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헬기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정부 대책은 미흡했다. 지난 5월 임하댐 헬기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그제야 헬기 안전대책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연구용역 과업지시서 안에는 정작 서울 도심의 헬기 사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동안 헬기 사고 대부분 특수 업무 수행 중 발생해 이번 용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개선책을 집중적으로 마련할 예정이었다”며 “남은 연구기간 동안 초고층 빌딩의 항공기 사고에 대해서도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헬기에 대한 규정이 허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헬기 사용사업자는 인력·시설·장비 등의 적합 여부를 사전에 검증하고 지속 감독하는 운항증명이나 운항자격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는 대한항공처럼 운항사업자에게만 적용된다. 사전에 헬기 안전에 대해 정부가 검증할 수단이 없다 보니 민간 헬기는 안전에 무방비로 더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