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의 무대와 일상] 아파트 관리비를 벌러 다니는 사람들
by김병재 기자
2012.10.18 10:14:44
[글로벌 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이미정] 얼마 전 필자가 쓴 뮤지컬을 올렸다. 작가는 일단 대본을 던지고 나선 연출과 배우에 의해 재창조 될 무대를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두둥! 드디어 첫 공연 날. 칵테일 바가 배경인 무대는 소극장 좁은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칵테일 바를 그대로 차려 놓은 듯 화려했다. 무대 중앙에 자리 잡은 긴 테이블과 그 위에 달린 중앙의 둥근 조명등 그리고 옆면에 격조 있는 벽 인테리어와 책장까지..
하지만 조명이 들어오고 공연 중반부로 갈수록 필자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화려한 무대세트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전환이 불가능해 오히려배우들의 동선을 방해했다.
칵테일 바가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배우들은 무대 중앙을 피해 구석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고, 테이블 바 위엔 거대한 둥근 조명등은 점프 같은 상하 동작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격렬한 쇼를 기대하기엔 중앙에 차지한 바가 너무 길었고, 남은 무대 공간또한 관객석과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의 원근감이 살지 않아 소극장이 더 작아 보였다.
살짝 설명을 붙이자면 흔히들 연극은 영화 보다 한정된 공간 때문에 그 스케일이 작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극의 특성을 알고 나면 표현이 훨씬 방대하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실성’ 이 중요한 영화와 달리 연극은 ‘상징성’으로 무대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다 속”이 배경인 영화에서는 실제 카메라를 들고 물속을 촬영해야하지만 연극은 무대 위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바다> 라고 써두기만 해도 관객과 연극 실연자와의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곳이 바다임을 믿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연극적 약속, 연극적 상상력>의 힘인 것이다.
무대의 중앙을 세트에 내주고 사이드로 밀린 주인공을 보면서 필자는 얼마 전 방문했던 선배의 모습이 중첩되었다. 마흔이 넘은 늦깎이 결혼을 한 신혼부부 선배는 강남 근처의 이름 있는 32평 아파트에 역시 도도해 보이던 그 평소의 캐릭터와 맞게 비싸 보이는 카페트에 고급 가죽 소파, 멋진 영화를 보며 쉴 수 있는 영화시스템까지 두루 갖쳐 둔 것을 자랑했다.
그 선배는 이 아파트 평당 가격이 얼마인지, 그리고 이 카페트와 가죽 소파가 얼마나 비싼지를 설명하면서 조심스레 이물질이 떨어질까봐 그 카페트를 둥둥 걷고 소파를 등받이로 한 채 바닥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행복해 보이던 선배언니는 이내 심각해 졌다. “ 얘 나 이렇게 여기 앉아서 얘기하는 이런 날 사실 흔치 않아...” 말인 즉슨 두 부부는 정작 집에 있을 시간도 얼마 없이 아파트의 대출금과 관리비를 벌러 하루종일 나가 일을 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다달이 돌아오는 납부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앉아 커피 마실 기분도 안 난다는 것이다.
평생 일해 아파트를 장만하고는 정작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현대인들. 아파트 거실엔 숨도 쉬지 않는 TV 냉장고 가구들을 모셔 놓고 정작 주인공은 연극 무대 배우처럼 사이드로 밀려나 살고 있는 건 아닐지 ..
평당 그 비싼 그 집에 중앙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은 TV와 소파, 테이블이다. 오늘도 당장 몇 시간 잠을 자기 위해 등을 붙이고 우리는 그 공간의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헤맨다. 흉물스럽게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는 소파와 말도 안해주는 ‘양탄자‘와 눈을 나쁘게 하는 벽걸이 TV가 편히 쉬게 하기 위해서 관리비를 벌러 다닌다. 표면적으론 ‘ 하우스 푸어’ 의 문제로 보인다. 개인적인 행복의 장애물을 사회적인 책임으로 모두 떠넘기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을 탓하고 있을때 잃어가고 있는 개인의 행복은 가정의 구성원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우리 집이란 ‘무대’ 를 세트가 아닌 주인공의 상상력과 감성으로 채워 놓아야 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