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반도체 10개사, 투자 대폭 삭감…"4년만에 감소"

by방성훈 기자
2023.08.21 09:41:36

올 투자계획 163.6조, 전년比 16%↓…10년래 최대침체
작년 先투자, 공급과잉 우려 및 中경기둔화 등 영향
중장기 수요는 여전히 낙관적…“전기차·AI용 수요 급증”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전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 10개사의 올해 투자액이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다툼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 재편으로 자국 내 투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난해 미리 투자에 나선 데다, 올해 공급과잉 우려 및 중국의 경기둔화 등이 겹친 영향이란 분석이다.

(사진=AFP)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21일 미국·유럽·한국·대만·일본의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 10개사의 설비투자액 계획을 자체 조사한 결과, 올해 투자액은 전년대비 16% 감소한 1220억달러(약 163조 6000억원)로 집계됐다. 스마트폰이나 PC에 사용하는 메모리 반도체 투자가 44% 큰 폭 줄었고, PC 또는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연산용 반도체 투자도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투자액이 줄어드는 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10년 동안 최대 투자 침체다. 이는 지난해 미·중 기술패권 다툼이 본격화한 이후 세계 각국이 자국에 투자할 경우 보조금, 세액공제 등의 지원을 확대하면서, 기업들이 올해 예산을 지난해 앞당겨 쓴 영향이 크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10개사의 투자액은 총 1461억달러(약 195조 9200억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미국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즈,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대만 TSMC, 한국 SK하이닉스(000660), 그리고 합작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미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 홀딩스를 1개사 취급해 총 6개사가 올해 투자를 줄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공급과잉 우려 및 이에 따른 반도체 가격 하락이 영향을 미쳤다.

올해 6월 말 현재 자료를 공개한 9개사의 재고자산은 전년 동기대비 10% 증가한 889억달러(약 119조 2150억원)로 집계됐다. 반도체 부족이 심화하기 전인 2020년과 비교해 70%가량 급증한 규모다. 이는 반도체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DRAM 및 낸드 가격은 8월 현재 전년 동월대비 40% 이상 떨어졌다.



이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최근 재무보고서를 통해 재고 및 공급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D램과 낸드 웨이퍼의 생산 가동률을 30%가량 낮췄고, 내년까지 감산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비투자액도 40% 삭감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감산 규모를 5~10% 확대, 전년대비 투자를 50% 이상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미나미카와 아키라는 “10~14나노미터(㎚·1㎚=10억분의 1m) 제품은 공급이 과잉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컨퍼런스콜에서 중국의 경기둔화를 투자 삭감 요인으로 꼽았다. 애널리스트들은 인텔의 올해 투자액이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며, PC의 주요 소비 시장인 중국의 상황이 불투명해지면서 공장 관련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는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미 애리조나주 공장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가동 시기를 내년에서 2025년으로 연기했다. TSMC의 올해 설비투자액은 5년 만의 감소가 예상된다.

다만 중장기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기자동차 및 인공지능(AI)에 쓰이는 반도체 수요 폭증에 힘입어 2021년 약 6000억달러(약 804조 6600억원)에서 오는 2030년 1조달러(약 1341조 1000억원)로 70%가량 커질 것으로 추산됐다.

옴디아는 “세계 반도체 수요 가운데 차량용 반도체는 현재 약 10%에 그치지만, 전기차 보급 및 차량 기능 제어를 위한 반도체 사용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관련 시장 규모가 2025년엔 830억달러(약 111조 3100억원)로 2022년 대비 약 50% 확대하겠다고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스태디스타도 “2025년 AI 반도체 수요는 2022년 대비 3배로 불어나고, 2030년엔 13배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