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떨치려"..대담해지는 10대들의 ‘동물학대 N번방’[헬프! 애니멀]

by김화빈 기자
2023.03.27 09:30:21

익명성 보장된 SNS서 주로 활동
전문가 "동물 살해·유기 넘어 범죄 예고하며 유명세 형성"
"동물 윤리 교육 경험 부재→생명 경시 경향"
수도권 광역 의회, '동물 학대 예방 교육 지원' 조례안 통과 잇따라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곧 죽을 것처럼 끅끅대서 일단 풀어 줬는데 죽진 않겠지?” 햄스터를 결박해 옷장 속에 3시간 가량 가둔 뒤 이를 자랑하듯 게시해 사회적 공분이 일었던 ‘디시인사이드 햄스터 학대 사건’과 눈이 내린 공터 바닥에 고양이를 내려친 뒤 발로 밟은 ‘양구 고양이 학대 사건’은 피의자가 미성년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경북 포항 일대서 약 4년 간 벌어진 고양이 연쇄 살해 사건의 첫 제보자도 초등학생이었다. 이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동물권 보호를 위해 일선 현장에서 동물보호법 강화 못잖게 중요한 것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효성 있는 동물 학대 예방 교육이라는 주장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발생한 ‘고양이 패대기’ 사건의 피의자는 10세 미만의 초등학생으로 확인됐다 (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지난해 3월 국회에선 ‘온라인 동물 학대 범죄 예방과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인 10대 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동물 학대 N번방’ 범죄가 기승을 부려서다. 최근 온라인 동물 학대 범죄는 카카오톡 익명 오픈 채팅방, 텔레그램, 가상 사설망(VPN) 등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최민경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행동팀 팀장이 국회 토론회서 발표한 ‘온라인 동물 학대 범죄 최근 사례 특징·문제점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이 범죄는 △익명성 △과시욕 △범죄 정당화 △계획성 △지속성이라는 특성을 보인다.

즉 온라인 동물 학대를 일삼는 이들은 예컨대 고양이를 ‘털바퀴’라고 지칭하며 죽여도 되는 존재로 정당화하면서 학대한 뒤 익명성이 보장된 채널에 자신의 범죄를 과시한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자신이 게시한 동물 학대 사진·영상에 관한 대중의 반응을 즐기면서 점점 가혹한 방법을 써 범죄를 저지르는 특성도 보인다.

이에 대해 박미랑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동물을 죽이거나 괴롭히고 유기하는 수준을 넘어 최근 몇 개의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동물 학대를 예고하고 게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지속적인 동물 학대 영상 노출은 누군가의 행복권을 침해했다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겐 간접 학대이며 가해자를 양산해 내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온라인 동물 학대 양태. 이미지=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상경 경위 제공.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소속 프로파일러인 이상경 경위도 “온라인 동물 학대는 전통적인 동물 학대와 범행 동기 및 범죄 행동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온라인 동물 학대는 학대범들이 학대 행위를 통해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경위는 “자신의 학대 행위를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될수록, 아이디가 ‘악명’이 높아질수록 만족감은 더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범행을 광고한다”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과는 유대감을 강화하고 집단 내 명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반면 적대시하는 집단들에는 적대감을 표출하고 약 올리거나 괴롭히려 한다”고 봤다.

문제는 온라인 동물 학대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유포되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가 폭력적인 사진·영상물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특히 아동이나 청소년의 경우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천적 동물 윤리 교육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등재된 ‘실천적 동물 윤리에 근거한 중학교 도덕 교과의 동물 윤리 교육 개선 방안 연구’ 논문은 청소년 시기의 동물 학대가 이후 인간 학대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교육 과정서 동물 윤리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논문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 성향을 보이는 경우를 제외한 청소년기 동물 학대에 대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 동물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괴롭히는 데 대해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경기·인천 시·도의회에선 시민 사회 요구에 따라 동물 학대 예방 교육을 지원하는 조례안이 잇따라 통과되고 있다.

재작년 통과된 ‘경기도교육청 동물 학대 예방 교육 및 지원 조례안’을 필두로 서울·인천시교육청에도 예산을 지원하는 조례안이 마련됐다. 강원도의회도 강원도교육청의 해당 조례 신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례안에 담긴 주된 내용으로는 △일선 학교에서 동물 학대 예방·생명 존중 교육 실시 △지원 계획의 수립·시행 △재정 지원 △교육감 책무 명시 등이다. 다만 학교보건법 제9조의2와 시행규칙 제10조에 따라 법정 의무 교육인 보건·응급 처치 교육과 달리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되는 동물 학대 예방 교육은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조례안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형식적인 일회성 교육에 그쳐선 안 된다며 예방 교육을 수행할 교사들의 충분한 직무 교육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포항에서 학대 당해 죽어 있던 고양이 홍시를 발견하고 용감하게 경찰에 신고한 초등학생을 기억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한 것뿐인데 그것은 경찰 수사로 이어졌고 학대자는 역대 최고형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아동·청소년이 동물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고 건전한 생명 존중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