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슨 "더 쉬고 더 놀아라..혁신은 여유에서 나온다"

by김혜미 기자
2013.06.19 10:00:01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 "韓, 혁신·기술적 성공 인상적"
"창의력 키우려면 교육과정에 비주류 문화 등도 넣어야"
"美, 페이스북 신화 '용서·아웃사이더의 문화'가 만들어"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어떤 문제에서 해답을 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는 바로 ‘예전엔 어떻게 했나’를 찾아보는 것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과거로부터 좀 더 나은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과거란 냉정하게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사진 : 권욱 기자)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45)은 2003년 어느 날 문득 냉장고와 텔레비전, 원자로 같은 ‘세상을 바꾼 뛰어난 아이디어’들의 공통점을 분석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소 전자제품의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나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책이나 신문을 들여다보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묶고 분석하는 작업을 7년간 계속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평소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대해선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7년간 책을 쓸 생각을 하며 계속 준비했죠. 아이디어를 묶고 그 아이디어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시점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12일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WSF2013) 참석차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존슨은 책을 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때 실리콘밸리 인근 캘리포니아주에 산 적이 있다는 그는 짧은 시간에 혁신적이고, 기술적인 성공을 이룩한 한국에 와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데 큰 즐거움을 표시했다.

‘혁신’과 ‘창의력’, ‘융합’ 등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정책목표로 내세우면서 혁신의 근간인 ‘창의력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존슨은 ‘창의력’이 천성일 수도 있지만, 문화를 통해 혹은 성장 과정에서, 주변환경에서 창의력이 키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수학이나 과학 등 기존에 중요시했던 과목은 물론 그동안 등한시했던 과목에 대해서도 이제는 좀 더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존슨은 “창조경제를 위해선 펑크음악이나 형식을 깬 건축물 같은 비주류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펑크음악이나 형식을 깬 예술품 등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히피문화’를 혁신의 근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는 히피문화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혁신의 사례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데 일조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들은 모두 히피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사업의 대상이 아닌 ‘자유화를 위한 도구’와도 같았다.

처음부터 돈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자유와 창의를 추구하다 보니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결국 성공가도에 올랐다는 게 존슨의 설명이다.

존슨은 “IBM과 같은 큰 회사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틀’로만 세상을 봤기 때문”이라며 “기존의 시각이 아닌 다양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대한 기업가들은 단순히 기업문화에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건축이나 음악, 유명한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또 그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IBM의 사례에서 보듯,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비대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벤처나 중소기업에 비해 과감하게 도전에 나서기 어렵다. 하지만, 존슨은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대기업 역시 혁신에 동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근무시간의 20%를 ‘혁신의 시간’으로 사용하는 구글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구글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들은 최근 창조성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구성원 개개인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허락하는 것만으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존슨은 “대부분 사회나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좀처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에만 집중하기 보단 산책을 하는 등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IT강국으로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찌감치 개발된 우리나라에서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존슨은 미국 내 ‘용서의 문화(forgiving culture)’와 ‘아웃사이더 문화’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을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용서의 문화’란 용서란 단어에서 짐작하듯, 단 한 번의 실패로 ‘실패자’라는 낙오를 찍어선 안된다는 의미다. 존슨은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해고된 뒤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애플에 돌아와 재기에 성공했다”며 “‘지금은 수익을 내지 못해도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라는 자세가 중요하고, 인내심을 갖고 실패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웃사이더의 문화’란 사회의 성숙도를 말한다. 이제 갓 20살이 된 대학생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개발했을 때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성공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경험 없는 초짜’를 받아들여야 ‘한국의 스티브 잡스’도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혁신’의 의미는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조금 달랐다. 혁신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한번에 뚝딱 만들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생각을 조금씩 진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 아프리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모래 먼지에 강하고, 쉽게 수리할 수 있는 맞춤형 인큐베이터가 탄생한 사례가 바로 혁신이다.

존슨은 한국, 특히 서울을 가능성의 도시로 평가했다. 서울이야말로 여러 가지 문화나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혁신을 이끌어온 도시라는 판단했다. 다만 서울에서 애플처럼 혁신적인 기업,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적인 인물이 나오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제조업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지만 이제는 창조경제로 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출현하기 위해선 시간적인 여유와 함께 문화적인 다양성도 인정하는 사회적 토양을 통해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존슨은 “한국은 기술적이고 엔지니어적 접근과 함께 디자인이나 히피문화 같은 다른 문화를 접목해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면서 “미국 역시 소리바다의 원조 격인 냅스터(Napster) 발명 이후 새로운 혁신이 나타나기까지 15~18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존슨은..

과학과 기술, 역사, 개인 경험의 조합을 뛰어난 역작으로 풀어내는 과학저술가다. 전지구적 흐름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해석한 ‘이머전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700년 동안 나온 200개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분석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를 통해 또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브라운대 재학시절에는 기호학을, 컬럼비아대학에선 영문학 석사를 전공했다. 과학 관련 전공은 하지 않았지만, 과학기술과 관련한 내용을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평소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아 관련 도서를 즐겨보는 편이다.

존슨은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저서들은 잇따라 온·오프라인 매체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는 ‘800-CEO-Read가 선정한 2010년 최고의 비즈니스도서’와 아마존 최고 비즈니스 도서,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됐다.

온라인 매거진 ‘FEED’ 창간자이자 인터넷 포럼사이트 플라스틱닷컴 개설자이며 온라인 도시지리정보 포털사이트 아웃사이드 인(outside.in)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저서로는 대표작 ‘이머전스’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외에도 ‘바보상자의 역습’, ‘바이러스 도시’ 등 총 8권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