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현금없는 사회올까]②불법거래 막으려면 현금 없애야?

by함정선 기자
2018.04.20 08:32:25

영국 50파운드 종이지폐(출처=영국중앙은행)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5파운드, 10파운드 지폐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20파운드 지폐는 아직 종이 지폐인데 영국중앙은행(BOE, 영란은행)은 폴리머로 만든 신권을 2020년 선보일 예정입니다. 2015년 새 종이 지폐를 선보인 50파운드는 폴리머 신권으로 만들지 여부를 아직 고민 중인 상태고요.

영란은행은 왜 순차적으로 종이 지폐를 폴리머 지폐로 바꾸고 있을까요.

신용거래나 가상화폐 등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결제 수단이 현금 사용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실물 화폐가 앞으로도 쭉 계속 쓰일 것이라는 장기적인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저렴하게 발행할 수 있고, 더 오래 사용하면서 발행 비용 등을 아끼는 방식의 화폐로 바꾸고 있는 것이죠.

또한 현금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현금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불법거래에 쓰이거나 위조나 돈 세탁 등 범죄에 악용돼 왔죠.

실제 지난 2015년 영란은행은 발권한 지폐 가운데 적어도 절반이 해외에 유통돼 있거나, 아니면 마약거래, 매매춘 등 불법거래에 쓰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앞서 진행된 다른 연구에서는 유통되고 있는 파운드화 가운데 약 11%에 코카인이 묻어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요.

유럽중앙은행(ECB) 이 발행하는 유로화 지폐 가운데 최고액권인 500유로(약 65만원) 지폐는 돈세탁과 테러집단의 자금지원 등에 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테러집단 알 카에다 우두머리 이름을 따 ‘빈 라덴 지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죠. 고액권이 무게와 부피가 가벼우면서 불법거래 이용에 쉽게 이용된다는 사례가 늘자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2016년 5월 결국 500유로 지폐 발행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영란은행이 위조가 어려운 폴리머 지폐로 통화를 순차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지폐가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범죄와의 연관성을 들며 현금을 점진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완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폴리머 지폐는 방수 기능과 내구성 등을 높여 기존 종이 지폐 유통기한보다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지폐 안에 최첨단 보안 기술을 넣어 위조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현금 이용에 있어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세금탈세에 자주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가사도우미나 정원관리사, 베이비시터에 노동이나 서비스의 대가에 대해 조세당국에 신고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그들이 소득에 대한 세금을 회피할 수 있도록 조장하거나 돕는 행위죠. 이런 식으로 영국 조세당국의 감시를 피한 세금은 연간 62억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피터 샌즈 하버드 케네디스쿨 펠로우는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이나 조직이 범죄행위에 가장 선호하는 거래수단은 현금”이라며 “현금만큼 익명성을 보장하고, 추척을 어렵게 만들고, 널리 쓰일 수 있는 다른 수단은 없다”라고 분석했죠.

결국 현금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모든 거래를 기록이 남는 카드 등 전자거래 형태로 바꾸면 범죄자들을 추적하기도 쉽고 탈세를 막는데에도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범죄 및 탈세 예방은 인도와 중국 당국이 현금보다는 전자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식의 금융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마약거래 등의 범죄에 이미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 암호화폐 등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현금을 없애는 것이 범죄를 막거나 추적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애플 수장인 팀 쿡은 올해 초 열린 주주총회에서 “살아 있는 동안 현금없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이 현금이 아닌 애플이 개발한 결제수단인 애플페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발언이죠.

실제로 영국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카드, 모바일폰, 애플리케이션 등 현금이 아닌 결제수단 이용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영국 주요 금융회사와 은행 등이 회원인 UK파이낸스에 따르면 작년 체크카드가 현금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결제수단에 올랐습니다. 커피나 맥주 같은 소액 결제에도 현금보다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요.

현금 사용은 줄어들고 있으며 현금의 문제점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카드, 어플리케이션, 가상화폐 등 기술 발달로 다양한 결제 수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현금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