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비자나무 숲이 지키는 해남 윤씨 종택, 녹우당
by조선일보 기자
2009.03.24 12:00:00
| ▲ 안채에서 담소 중인 종손 윤형식 씨와 종부 김은수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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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남도로 가는 길은 고향을 찾아가듯 마음이 따스하다. 그 중에서도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을 찾아가는 길은 차향(茶香)이 그윽하고 싱그런 바람소리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녹우당(綠雨堂)이 있기 때문이다.
해남 연동리에 있는 녹우당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고택(古宅)이다. 조선중기 호남이 낳은 대시인으로 문학 뿐 아니라 철학을 위시해 천문, 지리, 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조문학에 특히 으뜸이었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4대 조부이자 해남윤씨의 득관조(得貫祖)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이 백련동(현 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헌상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어 대략 15세기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녹우당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해남 윤씨 종택 입구에 있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다. 해남윤씨가(家)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은행나무에서는 전통과 권위가 느껴진다. 오롯한 돌담길과 눈인사를 나누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녹우당이 고즈넉하다. 사대부 양반가의 고택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 하면 고택 전체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나, 사실 녹우당은 이 집의 사랑채를 말한다. 고산(孤山)이 수원에 있을 당시 효종(孝宗, 조선 제17대 왕 재위 1649∼1659)이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집이었다. 고산이 82세 되던 해(1669년) 낙향하며 이를 뱃길로 옮겨와 다시 지은 집이다.
한때 아흔 아홉 칸에 달하던 녹우당 고택은 현재 55칸만 남아 있다. 녹우당 별당에서 다산 정약용이 태어나고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학문과 예술을 키웠으며 소치 허유 등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머물거나 교류했다. 해남의 문예부흥이 이곳 녹우당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 ▲ 녹우당 전경(좌) - 녹우당 뒤쪽으로 펼쳐지는 비자림(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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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14대손인 종손 윤형식(尹亨植) 씨와 종부 김은수(金恩秀) 씨가 살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종가에 머물며 차밭을 일구고 제사를 모시며 종가를 돌보고 있다.
불천위 제례와 4대 봉제사, 가을 시제, 설·추석 차례까지 합치면 일 년에 30여 차례 제례를 모신다. 일 년에 두세 번 제례도 번거로워하는 시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이니 종가의 종손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사당도 세 개나 있다. 남동쪽 귀퉁이에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이 있으며, 외원(外垣) 바깥에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孤山)과 증조인 윤효정(尹孝貞)을 모신 어초은(漁樵隱) 사당이 있다.
| ▲ 14대 종손 윤형식 씨(좌) - 녹우당에서만 전해오는 비자강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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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를 둘러보고 돌담길을 돌아나가면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을 차례로 만난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추원당이 있고 산길을 따라가면 어초은 묘소를 지나 천연 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을 만난다. 가장 큰 나무가 높이 20m, 가슴 높이의 지름이 1m 가량 되니 호젓한 숲속 산책길이다.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가 노출되면 이 마을이 가난해 진다'하여 어초은이 심었다 전해진다. 바람이 불 때 비자나무 잎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녹색 빗소리 같다고 해서 이집에 녹우당(綠雨堂)이란 이름이 붙었다. 참으로 시적(詩的)이다. 이 집을 거쳐 간 고산이나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문학적·예술적 혼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자나무 숲길은 언제라도 좋지만 이슬이 마르지 않은 아침 산길이 가장 싱그럽고 마음까지 촉촉해진다.
이곳 비자나무에서 나오는 비자 열매는 해남윤씨 종부의 손에 의해 강정으로 다시 태어난다. 해남윤씨 종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을거리다. 비자 열매를 삭혀 껍질을 벗겨 알맹이만 남긴 다음 햇볕에 말린다. 이를 프라이팬에 볶아 조청이나 꿀을 발라 볶은 통깨로 고물을 묻히면 비자 열매의 향취와 쌉쌀한 맛이 독특하다. 감단자 또한 해남 윤씨 종가에서 선보이는 독특한 먹을거리다. 가을철 익지 않은 감을 따 가마솥에 푹 고아 거른 뒤 찹쌀가루와 함께 고아 식힌 후 갖가지 고물을 묻힌다. 이처럼 녹우당에는 대물림해 전해오는 해남 윤씨 종가의 전통이 살아있다.
고산유물관에서 전통을 더 확인할 수 있으니 윤선도가 직접 쓴 가첩(歌帖)과 윤두서의 작품들을 모은 고화첩(古畵帖)등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다수 있고, 그 중 윤두서의 자화상은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국보 제240호다.
| ▲ 우항리 공룡화석지(좌) -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전라우수영(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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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겠지만 해남 땅까지 왔으니 다른 곳도 둘러보자. 서쪽에는 1억 년 전 공룡들의 놀이터였던 우항리 공룡화석지가 있다. 공룡 익룡 등이 신나게 뛰어 놀았을 우항리 바닷가에는 사람 하나 들어갈 크기의 공룡 발자국들이 선연히 찍혀있어 가슴이 절로 쿵쾅거린다. 서쪽으로 더 가면 조선시대 공룡만큼이나 무게감이 있던 이순신 장군의 체취가 느껴지는 전라우수영이 자리한다. 거북선을 띄워 왜군을 제압하던 그 바다는 여전히 장대한 몸짓을 하고 있다.
| ▲ 국보 제308호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좌) - 100년 된 여관 유선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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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가보자. 피안(彼岸)의 세계로 들어가듯 아득한 느낌의 대흥사가 있다. 아홉 굽이 숲길이라고 해서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불리는 진입로는 2㎞에 걸쳐 측백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유유자적 숲길을 걷는 맛이 쏠쏠하다. 입구의 100년 된 여관 유선관도 좋고 사천왕상 없는 해탈문도 좋지만 대흥사 뒤쪽으로 난 산길을 걸어 오르면 만나게 되는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입이 절로 벌어지는 볼거리다. 본존불의 높이만 485㎝에 이를 정도로 웅장하며 좌우로 조각된 공양 천인상(天人像) 은 고려전반기 조각 표현을 알 수 있게 한다. 용화전을 해체, 보수하면서 그 모양이 들어나 보물 제48호에서 국보 제308호로 승격·지정된 것으로 ‘해남의 석굴암’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달마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고즈넉한 미황사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더 내려가면 땅끝이다. 북위 34도 17분 21초. 우뚝 솟은 전망대에서 쪽빛 남해를 내려다보면 일상의 묵은 때가 남해 하늘 위로 날아간다. 땅끝탑비 앞에 가면 그 느낌은 더 확실하다. 눈앞에 더 이상 육지는 없다. 그렇게 해남 땅 끝에 서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처럼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할 용기가 난다. 해남 땅은 용기와 희망을 얻는 곳이다.
- 해남 군청 : www.haenam.go.kr
- 대흥사 : www.daeheungsa.co.kr
- 미황사 : www.mihwangsa.com
- 해남군청 : 061-530-5114
-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 061-530-5229
- 고산 윤선도 유적지 : 061-530-5548
- 대흥사 : 061-534-5502
- 달마산 미황사 : 061-533-3521
- 땅끝 모노레일 : 061-533-4414
- 우항리 공룡박물관 : 061-532-7225
[ 기차 ] KTX 용산-목포, 하루 5회 운행, 2시간 58분 소요
[ 버스 ] 서울-해남 1일 7회 왕복, 5시간 10분
부산-해남 1일 4회 왕복, 5시간 20분
광주-해남 직통버스 30분 간격
[서울-해남] 서해안 고속도로-목포-영산강하구-해남
[부산-해남] 남해고속도로-순천 IC-벌교-보성-장흥-강진-해남
[대구-해남] 중부내륙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 IC-벌교-보성-장흥-강진-해남
- 백련재 : 해남읍 연동리, 061-537-8686
- 두륜산 온천랜드 : 삼산면 구림리, 061-534-0900
- 하얀집 : 송지면 송호리, 061-534-3223
- 땅끝 오토캠핑장 : 송지면 송호리, 061-534-0830
- 천일식당 : 해남읍 읍내리(해남읍권), 떡갈비, 061-536-4001
- 용궁해물탕 : 해남읍 평동리(해남읍권), 해물탕, 061-535-5161
- 장수통닭 : 해남읍 연동리(해남읍권), 코스별 닭요리, 061-535-1003
- 땅끝기와집 : 해남읍 남외리(해남읍권), 한정식, 061-536-2102
- 돌섬참붕어찜 : 삼산면 구림리(대흥사 인근), 붕어찜, 061-532-7200
- 금강산 횟집 : 문내면 학동리(우수영 인근), 활어회, 061-535-5114
- 땅끝 산이 매화축제 : 3월 21~22일 보해매실농원, 문의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229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미황사는 단청을 입히지 않은 대웅보전이 소박하고 단아한 사찰이다. 하룻밤 머물며 목탁소리를 친구삼아 명상하고 스님과 다담하며 발 아래로 펼쳐지는 다도해를 조망하는 산사체험이 추천할만하다. 달마산 미황사 : www.mihwang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