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의장 연일 이례적 발언 `왜?`

by정영효 기자
2008.06.05 10:42:38

재무부 고유권한인 환율문제·FRB 기준인 근원인플레 대신 명목인플레 언급
성장둔화+물가앙등 상황에서 인플레 기대심리 차단위한 버냉키의 외줄타기
외환시장 영향력 미미..금리인상·환시개입해야하는 상황 몰릴수도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이틀 연속 이례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그 배경에 궁금증이 더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달러 가치 하락이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 "연준은 재무부와 함께 외환시장의 변화과정을 주의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인 4일(현지시간)에는 "명목 인플레이션(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을 포함하는 인플레 지표)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인플레 기대심리를 부추기고 이것이 실제 물가를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벤 버냉키 FRB 의장
중앙은행장이 환율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극히 이례적이다. 환율정책은 재무부의 고유권한이다. 이에 따라 달러 약세를 우려한 버냉키의 지난 3일 발언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들였다.  

특히 이날(3일) 외환시장에서는 트레이더들이 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FRB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으로 해석하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기도 했다.

인플레 압력을 우려한 4일 발언도 극히 이례적인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FRB는 이날 버냉키 의장이 언급한 명목 인플레가 아닌 근원 인플레(변동성이 심한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인플레 지표)를 기준 물가지표로 삼기 때문이다.

3일 `달러 약세` 발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이 해석하는 대로 FRB가 금리정책 기조를 변경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FRB의 무게중심이 경기후퇴(recession) 방어에서 인플레 억제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금리를 내리면서 달러 강세를 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냉키 의장이 명목 인플레를 우려한 배경은 뭘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플
▲ 최근 유로/달러 추이(출처=로이터)
레 기대심리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주요인이 국제 유가와 상품 가격 급등인 만큼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을 반영하는) 명목 인플레가 상승하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를 부추켜 근원 인플레마저 끌어올릴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최근 버냉키 의장의 잇따른 이례적 발언은 성장 둔화와 물가 앙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종합할 수 있다.

금리를 올릴 수도 그렇다고 내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이 금리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것임을 시사함과 동시에 환율과 명목 인플레를 우려함으로써 인플레 기대심리를 차단하겠다는 양수겸장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실제 버냉키 의장은 인플레 압력에 대한 우려가 주였던 4일 발언 말미에 "성장 둔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해 향후 금리정책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차단했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의 이같은 시도에 대해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달러 강세를 유도하려는 버냉키 의장의 시도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FT는 렉스칼럼을 통해 환시 트레이더들의 시선이 온통 다음주 열리는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의 성명서에 쏠려있는 상황에서 버냉키 의장이 외환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약세` 발언이 나온 3일 하루동안 달러 가치가 급등했을 뿐 4일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IDEA글로벌의 모리스 포머리 외환 담당 대표는 "미국의 경기후퇴 여부를 결정지을 집값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FRB가 금리정책 기조를 변경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FT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 이후 달러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경우 FRB는 권위와 신뢰성에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금리를 인상하거나 실제로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